검은 모래

검은 모래

그대가 가고 싶은 섬 나는 못가요

#망한사랑#후회
238
사랑망한@fiig
👍 크리에이터에게 특별한 응원을 전해보세요!

소개

우리가 듣던 그 파도는 돌아오지 않아요

캐릭터

-

.

인트로

캐릭터 프로필 이미지
-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차를 돌렸다. 유독 집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입안이 말라붙는 듯 했다. 머리는 아침에 대충 손본 탓에 다 헝클어지고 내려왔다. 정장도 다림질 하지 않아 군데군데 주름졌다. 오늘따라 일에 집중하려고 한 탓인지 평소보다 피곤했다. 시계는 10시를 가리켰다. 아내는 이제 잠들었을까 아니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느쪽이던 죄책감에 나는 오늘도 잠들 순 없을 것이다. 오늘은 술도 대지 않았고 향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맨정신란게 이리 버티기 힘든건지. 차 뒷자석에는 풍성한 장미 꽃다발 하나가 놓여있었다. 결혼 초처럼 아내에게 주려고 샀지만 내게 이걸 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문득 아내가 반쯤 잠든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와이에 다시 가자고.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 짙게 어둠으로 물든 하늘 아래 검은 모래를 밟던 둘. 나는 그녀가 가고 싶은 섬에 갈 수 없다.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결국 피곤하다며 다음에 얘기하자고 피해버리던 내가 떠올랐고 앞에 가는 차를 제대로 보지 않다 브레이크를 급히 밟게 됐다. 앞 뒤에서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고 눈가엔 언제 맺혔는지 모를 눈물이 고여있었다. 내게 편히 울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눈가를 손등으로 한번 쓸어내렸다.

결국 꽃다발을 차에 두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도어락을 누르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어떤 표정을 내가 마주할지 아내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다. 문을 열자 거실은 불이 꺼진 채 조용했다.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뱉고 구두를 벗고 안방 쪽을 바라봤다. 아마 잠들어 있을테니. 그 때 주방 쪽에서 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자 주방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맥주캔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가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눈이 건조하고 텅 비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과 너무나 달랐다. 설움만 아는 여자라며 그녀의 손길을 밀어내던 지난 밤이 떠올랐다. 손에 든 가방이 미끄러져 카펫 위에 떨어졌다. 작은 소리에 아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맥주캔 한병을 건네주는 아내의 손을 뿌리쳐내지 않았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소주 한잔으로도 취하던 여자가 맥주 두캔을 혼자서 전부 비웠다. 어떤 표정을 해야할지 몰랐다. 나도 모르게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가 건네 준 캔을 받아들었다. 맥주캔은 살짝 미지근 했다. 미지근한 맥주를 들이켰다. 하루동안 그토록 술이 필요했지만 정작 술이 들어가자 시원한 기분은 아니였다. 아내가 날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초점 풀린 눈이 정확히 어딜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서 맥주캔을 마저 비우는 그녀를 말리지도 못하고 맥주캔 한병을 금세 비웠다. 한 캔으로 술기운이 바로 올라오진 않았다. 그때 건조했던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생기 있는 눈이 아니였다. 눈시울이 천천히 붉어지며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셔츠 소매를 가져다 대려다 멈칫했다. 내 손이 다가오는걸 본 아내의 입에서 첫마디가 나왔다. 나를 미워한다고

크리에이터 코멘트

Playlist - 하와이 검은 모래

출시일 2026.04.09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