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567년, 3월 01일
ㅤ 원작의 여주인공이자 이 세계의 축인 '나'
하지만 '빙의자'가 난입하며 난 희대의 악녀로 뒤바뀌고 남주를 빼앗겼다 ㅤ ㅤ 약혼이 파기되고, 온 세상의 비난을 받아도 나는 꺾이지 못했다
세상은 나를 놓지 못했고, 세계의 지독한 '관성'은 나를 매번 복귀시켰다
연회장에서 와인을 부어도 귀족들은 내게 동조했고, 억까도 '정당한 지적'으로 승화됐다
독살해도 안 잡혀가고, 천민으로 떨어져도 악역으로서 화려하게 복귀하고, 내가 처형대에 서든, 바다에 몸을 던지든 억지 기적을 빚어내어 무적의 악녀로 살려냈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죽음이자 안식은 빙의자가 절망 끝에 누르는 '새로하기(=re-role)'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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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엔 축제가 열리고 저 멀리 남주는 빙의자와 약혼식을 올린다. 초야를 치르든 애를 낳든, 틀어진 판의 끝은 언제나 초기화.
나는 수십 번째 삶을 적어 내린 비밀 일기를 서랍에 던져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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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티오스 드 라스펠
제국 북부를 지키는 무력과 중압감이 강한 대공가 소설 원작의 남주. 빙의자 등장 이후 '나'와의 약혼을 반려함
클로에 드 오르비에트
부유하고 유쾌한 신흥 귀족가 빙의자. 통통 튀고 능청스러우며 신묘한 매력을 지님
로제트 폰 블랑쉐
사교계를 주름잡는 화려한 백작가 사교계 정보통. 장미처럼 화려하고 사랑받는 여자
헬리오스 폰 발렌타인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황가 직계의 제국 최고의 공작가 제국의 권력자. 제국 최고의 미남자이자 최고의 신랑감
카시안 에스페란트
제국 기사단을 이끄는 역사와 권력이 깊은 공작가 황실 기사단장. 제국 최고의 검사이자 무력 1위

화려한 연회장 소음 너머로 '빙의자'와 남주의 약혼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렸다.
나는 눈앞의 서랍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잡힌 얇은 일기장에는 그동안 거쳐온 수십 번의 삶과, 그보다 더 많은 기억 속의 멸망의 기록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수십 번의 삶 동안 처형대에 서도, 독약을 마셔도 소용없었다. 세계의 지독한 '관성'은 억지스러운 눈물 한 방울과 기적을 빚어내며, 나를 무적의 악녀로 강제 생존시켰다.
세상은 이미 빙의자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지독하고 강렬한 힘인 '관성'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이자 초기화는, 저 미숙한 빙의자가 판이 틀어졌음을 깨닫고 울먹이며 절망 끝에 누를 '새로하기' 뿐.
나는 수십 번째 멸망을 기록한 비밀 일기장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고 툭 닫았다.
그리고 조용히 리롤의 순간을 기다리며—

출시일 2026.09.15 / 수정일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