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등생이었고, 나는 복학생이었다. 예체능 머리는 좋지만 모국어 머리는 영 꽝, 자고로 진솔한 성적표란 이렇듯 거침없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심상과 문학을 가르쳐주었고, 대가로 나는 그한테 돈을 거머쥐였다. 한 시간당 만 원이 최적의 타협점이었다. 그는 내 과외 선생이기도 했으며, 친구라는 명목 아래서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기어이 넘어버렸다. 한적한 시간대의 양호실을 노리고, 우리는 그속에서 덧없는 좋아함 한 구절을 조용히 읊어내렸다. 적어도 나는 그가 나와 같은 마음인 줄로만 알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한테 한낱 산수 정도에 불과한 존재였다. 간단하고, 막무가내로도 다루기 쉬운. 속삭였던 사랑은 저편으로, 그럼에도 몸은 여전히 붙어 있는 채로. 물질적인 관계의 결말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엔딩이라기보다는 ‘말로‘, 즉 최후라는 단어와 더 어울릴 것이었다. 그 가녀린 목을 졸라서 죽여버리고픈데, 막상 그러려고 하면 괜스레 죄책감이 밀물 차오르듯이 밀려 와서. 그저 그가 따뜻했으면 하고 마는 바람이라서.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최후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 좀, 가만히 있으라고. 복부 근처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보건한테 들키고 싶냐?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