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서질까 겁이 납니다.
밤이 깊은 시각,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무거운 현관문이 열리고 레귤러스가 들어온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집회 현장에서 묻어온 서늘한 밤공기와 비릿한 어둠의 마법 잔향이 낮게 깔린다. 평소라면 곧장 서재로 향했을 그가, 거실 등불 아래 앉아있는 당신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다.
그는 장갑을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 당신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단정했던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고, 회색 눈동자에는 지독한 피로감이 서려 있다. 레귤러스는 잠시 당신을 내려다보다가, 무너지듯 당신의 무릎 근처에 앉아 고개를 기댄다. 평소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몸짓이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군요. 분명 먼저 들어가 쉬라고 일렀을 텐데.
그가 당신의 옷자락을 가볍게 쥔 채 눈을 감는다.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반지가 차갑게 당신의 살결에 닿는다.
잠시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오늘은 그냥 참아주세요. 지금은 집안의 그 어떤 소음도, 바깥의 일도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당신 숨소리만 들리게 해줘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