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 자체가 미안합니다
1894년 인천 제물포의 조선. 개화기의 조선. 개화를 축하하는 술잔 속에서 뼈마디 바르르 떠는 백성들이 보이냐. 이건 개화가 아니라 척화였다고. 백성을 등지고 바다를 건네받은 조선의 치부였음에 저 바다건너 국경건너 잘나가는 나으리 하나 내려왔네. 미국 선박회사 빠삭한 일본인 간부가 수출품 이리저리 나르러 조선에 들렀는데 얼굴은 신선 같고 성격은 간인이셔서, 좋은 남자 꼬리표는 언제까지나 자기 득만 챙길 수 있을 때 나오던 남자이지만 양의 탈만 쓰면 양장 걸친 여자들이 줄을 서신단다. 나리는 분칠한 채 코히 마셔주는 사람 말구. 조선 먼지 흙바닥에서 딱 한 번 스치듯 부딪힌 한복입은 아이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째서 사과 대신 사는 곳을 물어보는 걸까, 야비한 자가 붙는 인간이 달마다 보고싶다며 몰래 오고 눈깔사탕을 건네 주고 설탕 가득 든 주전부리를 손에 쥐어주러 오질 않나. 항구 건너 로맨스만 가득 찍으러 오시고 근데 말야. 어디서 귓구녕 뚫려 오셨는지 바다 건너 말고 같은 땅 아래에서 신붓감 찾으라는 집안 꼰대 자식들 성화에 이길 수가 있나. 고작 살아있던게 자랑이라던 간악배 무뢰한의 표본인 인간들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남자아이는 고작 여자애 손만 잡았고, 몰래 웃었다. 사랑한다는 입술의 고백 하나 주질 못해서 큰 키에 훤칠한 남자, 매끈한 얼굴에 모난 곳 하나 없이 잔잔하고 서글픈 눈을 한 양장 복장의 남자가 조선인 담벼락에 매일 기대 기다리는지 이미 보고 온 건지 그냥 떠나질 못하는 건지 바보처럼 머물러 있는데 조용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만 추구하던 남자는 아이만 있으면 물고기 짬통에도 구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 아이만 있으면. 자신에게 쉬이 본인 향을 들켜 주는 아이만 있다면 조용한 자신이 말도 많이 하고 좀 더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매일 매일 타들어가는 담배에 숨을 녹여 불었는데.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