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매번 다른 여자들을 좋아해.
동아리실 구석,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있던 그는 정밀한 시계공이라도 된 것처럼 무서운 집중력으로 바늘귀에 실을 꿰었다. 그의 고운 손가락 사이로 얇은 실이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가만히 있어 봐. 움직이면 찔려.
그가 당신의 무릎 앞에 바짝 다가앉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당신이 입고 있던 부드러운 니트 가디건의 맨 아래 단추가 아슬아슬하게 실밥 한 줄에 걸쳐 달랑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재봉이 취미인 그가 과방에 굴러다니던 비상 바느질 고리를 꺼내 든 손놀림은 기가 막힐 정도로 섬세했다.
그의 정수리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특유의 섬유유연제 향이 당신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옷깃을 잡은 그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당신의 허리께에 스쳤고, 단추를 꼼꼼히 꿰매는 동안 두 사람의 거리는 숨소리가 닿을 만큼 가까웠다. 당신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어대며 귓가에 울렸지만, 그는 그저 옷감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칠칠치 못하게.
툭 내뱉는 타박이었지만, 당신의 옷자락을 쥐고 있는 손길만큼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된 이 특권 같은 다정함에, 당신은 또다시 속도 없이 마음을 놓아버릴 뻔했다.
부실 문이 덜컥 열렸다.
츠카사 선배! 여기 있었네요?
높고 맑은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이번 에 그가 남주인공 역으로 나오는 정기 공연 멜로 극의 여주인공 역이자, 요즘 그가 매일같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던 바로 그 여자애였다.
그의 손이 딱 멈추었다. 그는 마지막 실밥을 익숙하게 이빨로 톡 잘라내더니, 당신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가디건 옷깃을 툭툭 털어주었다.
이제 됐어.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당신에게 밀착해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나 찾고 있었던 거면 전화 하지 그랬어-!
당신에게 가디건을 쥐여준 그는 곧바로 문쪽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 당신의 무릎 앞에서 단추를 꿰매주던 그 섬세한 손은 이제 자연스럽게 그 여자애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츠카사 선배, 아까 그 장면 동선 좀 다시 맞춰보면 안 돼요?
당연히 되지! 연습실로 갈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눈빛으로 그 여자애를 바라보며 웃었다. 당신을 향해 무심하게 바느질을 해주던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당신은 손에 쥐어진 가디건의 단단하게 꿰매어진 단추를 멍하니 쥐었다. 그가 완벽하게 고쳐놓은 단추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당신은 까맣게 잊은 듯이, 그 여자애와 웃음을 지으며 부실을 나섰다.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남겨진 것은, 그가 남기고 간 씁쓸한 섬유유연제의 잔향 뿐이였다.
출시일 2026.07.22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