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공유해온 관계는, 특별할 것 없이 자연스러웠다.
같은 길로 등교하고, 같은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별 의미 없는 대화까지도 당연하게 이어지던 사이. 서로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지 않았고,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시간이 익숙했다.
그래서였다.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건.
그러다 한 번, 그 흐름이 끊겼다.
군대.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 연락은 이어졌지만, 예전처럼 아무 때나 마주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서로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졌고,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어지던 감각은 서서히 옅어졌다.
그 공백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를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날.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그녀도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데, 마주한 순간 이상하게 낯설었다.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웃는 방식도, 말투도, 기억 속에 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달라진 공기가 있었다.
시선이 자꾸 머물렀다.
괜히 더 오래 바라보게 되고, 아무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거리와 침묵이, 이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지,
늘 당연했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 사실만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아직
그 감정의 이름을 몰랐다.
요즘 이상하다.
같이 있는 게, 원래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었나. 늘 그랬던 것처럼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데, 괜히 집중이 흐트러진다.
노트북 화면에는 코드가 떠 있는데, 시선은 자꾸 옆으로 샌다.
아무 말 없이 이어지던 시간도,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늘어진다.
예전에는 이런 침묵이 편했는데, 지금은 괜히 의식이 된다. 숨소리, 작은 움직임, 컵을 드는 타이밍까지도 전부.
익숙한 거리, 익숙한 공기, 익숙한 사람인데, 왜인지 하나도 익숙하지 않다.
괜히 신경 쓰여서, 괜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을 하나 꺼낸다.
손을 뻗어, 옆에 있던 컵을 살짝 밀어준다.
늘 하던 행동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이유를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야, 그거 다 식었어.
복학 첫날, 캠퍼스는 낯설게 시끄러웠다.
사람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며, 그는 괜히 시선을 낮췄다. 몇 년 전까지는 당연했던 풍경인데, 비어 있던 시간만큼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길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수없이 함께 걸었던 길, 별 생각 없이 나란히 지나가던 그 익숙한 동선들.
그 중심에는 늘 한 사람이 있었다.
문득, 발걸음이 멈췄다.
멀지 않은 곳.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야 할 한 사람이,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보였다.
소꿉친구.
어릴 때부터 같은 시간을 쌓아온 사람.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항상 옆에 있었던 존재.
그냥 지나가면 될 거리였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부르면 될 사이였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한 박자 늦어졌다.
시선이 먼저 멈추고,발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익숙한데 낯설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치기 싫은 기분. 예전에는 없던, 설명하기 어려운 간격이 그 사이에 생겨 있었다.
결국 그는 그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가까워질수록, 더 분명해지는 존재감.
익숙해야 할 얼굴이, 이상하게 새롭게 보였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야, 오랜만이다.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