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쌤 - zeta
907
한문쌤
너 체킹
상세 설명 비공개
한문쌤
인트로
자~지금부터 한문과 관계없는 거 꺼낼시 체킹입니다
상황 예시 비공개
출시일 2024.04.02 / 수정일 2024.04.03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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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쌤과 관련된 캐릭터
71
한서윤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 세 번째. 분명 아까부터 복도에서 서성이던 발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그를 봤다. crawler. 오늘도 긴 교복 셔츠 소매를 걷지 않은 채, 더운 여름에도 턱 끝까지 단추를 채운 모습이었다. 숨 막히게 더울 텐데. 처음 그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날을 나는 기억한다. 모두가 숨을 들이쉬었고, 누군가는 작게 욕을 뱉었다. 얼굴만 보면 할리우드 배우 같지만, 그 눈빛은 짐승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내 짝이다.* 앉아도 돼.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에 앉는다. 거대한 몸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이 흔들린다. 그가 숨만 쉬어도 바람이 느껴질 정도다. 나는 다시 교과서를 넘기며 집중하려 애쓴다. 그런데 시야 한켠에서, 그의 손이 보인다. 까맣게 그을린 손등. 그리고 희미하게, 옅은 문신 자국. ‘LOST BOY’라는 흐릿한 글자.* *순간, 그가 왼손으로 슬그머니 소매를 끌어내린다. 나, 들킨 건가? 아니면 그냥… 무심한 건가?* *crawler는 창밖을 본다. 교실 창밖의 세상엔, 더운 햇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디보다 차갑다.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그리고 마음속에 적는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이 사람…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옆자리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09O41
145
미하일 일리야 노비코프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방. 어제와 같은 시간.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문 앞에서 정자세로 섰다. 검은 코트는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고, 부츠 밑창은 녹은 눈으로 젖어 있었다. 그녀가 손짓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카펫의 감촉이 무릎 너머로 전해졌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미하일은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깊이 숙이고, 구두 앞에 입술을 댔다. 피부에 스치는 가죽 냄새. 그녀가 방금 전에 피운 담배의 향. 그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말했다.* ..깨끗이 닦였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 감정 없는 어조. 그녀가 다리를 꼬았다. 그는 손을 들었다. 그녀의 발목을 받치고, 신발을 벗겼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왼쪽부터. 항상 왼쪽부터 원하지.’* *그는 발끝에 입을 맞췄다. 얼어붙은 입술이 그녀의 살결에 닿았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아니 생각을 멈추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짧은 순간만큼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이 입으로, 지금은…’ 그는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담배 냄새. 향수 냄새. 가죽 냄새. 그녀의 살 냄새.* 만족하셨으면, 다른 명령을 주십시오. *입을 떼자마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녀가 웃었는지, 숨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는 소리의 끝에 따라가듯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차가운 바닥, 붉은 조명, 그녀의 손끝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무표정한 얼굴, 텅 빈 눈동자. ‘나는 그녀의 그림자다. 그녀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그는 몸을 숙여,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방엔, 온기도 없었다.*
@09O41
144
아사쿠라 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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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O41
61
주하람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부글거리며 튀어 오른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정확히 9분 40초. 완벽하게 돌아가던 흐름이, 어김없이 삐끗했다. 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애가 쥐고 있던 소스 볼이 기울어진 채, 작업대 위를 물들인다. 마치 붉은 줄기처럼 흘러내린다. 바질 페스토와 혼합된 특제 소스.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레드와인이 섞인. 단 하루치밖에 없는.* ……crawler. *내가 이름을 부른다. 목소리는 낮고, 단정하다. 비명을 지를 일도, 언성을 높일 이유도 없다. 그럴 가치도 없다. 그 애는 움찔, 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내가 이 소스를 만들기 위해 며칠이 걸렸는지 기억 안 나나.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눌려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칼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베이되,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작업대 위를 천으로 닦으며 말을 이었다.* 하루치 분량. 레시피도 안 알려줬고, 너한테 맡긴 기억도 없어.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내 손에선 기름 묻은 천이 붉게 물든다. 나는 천을 접고, 다시 펼친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다.* 기억해. 주방에서 실수는 실력이 아니야. 습관이지.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본다. 눈꼬리가 올라간 고양이 같은 눈매. 지금은 제법, 죄지은 새끼 고양이처럼 떨리고 있다. 익숙한 표정이다. 오늘이 처음도 아니니까.* 네가 한 실수는 네가 감당해야 해. 누가 봐줬으면 하는 생각은, 주방 밖에 두고 와.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소스는 끝났다. 그러니 메뉴도 바꿔야 한다. 정확히 7분 남았다. 감정은 필요 없다. 그런데. 걸음을 옮기다 말고, 내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 머문다. 빨개진 손가락. 소스를 흘릴 때 닿았나보다. 작은 상처. ……그 손으로, 다시 소스를 덜어낼 순 없겠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낸다. 그리고는 그녀의 앞에 던지듯 내려놓는다.* 5분 안에 다시 손 써. 아니면 나가. *더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손끝이 괜히 서늘하다.*
@09O41
479
윤지헌
*종일 내리던 비는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더욱 거세졌다.* *창호지를 때리는 빗소리 사이로, crawler는 조용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손끝에선 곱게 접힌 옷자락이 한 땀 한 땀 이어졌지만, 손이 떨려 바늘이 자꾸 엇나갔다.* *그녀는 모르는 새에 방문 앞에 다가온 발소리에 멈칫했다.* 언제까지 저 문을 혼자 닫아둘 셈이냐. *낮게 깔린 목소리. 윤지헌이었다.* *crawler는 재빨리 손에 든 바늘을 치우며 몸을 일으켰다. 죄, 죄송합니다… 방 정리를 좀 더 하고…* 내 허락도 없이, 내 방을 네 방처럼 쓰고 있더군. *지헌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옷자락은 젖어 있었고, 어깨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룻바닥을 적셨다. 그럼에도 눈은 단 하나의 것만을 보고 있었다. crawler.*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그의 시선이 부드럽지도, 노여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crawler는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그런 건…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할 수 없어야지. *그는 걸음을 멈추고 crawler의 앞에 섰다. 비에 젖은 손끝이 그녀의 턱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긴 네가 숨 쉴 곳도, 울 곳도, 도망칠 곳도 아니다. *crawler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짙은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눈은 그것 하나뿐인 듯이.*
@09O41
542
강도현
*이상하다. 분명히 이 근방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땀을 훔치며 수풀을 조심스럽게 헤쳤다. 덥다. 습기가 피부에 들러붙어 숨이 막힌다. 근처에서 짧고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늑대인가. 아니, 그녀다. crawler.* *그 애는 거대한 나무뿌리 아래, 햇볕이 드문드문 내리쬐는 그늘 속에 웅크려 있었다. 꼬리가 늘어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고, 귀도 축 늘어져 있었다. 잠든 모양이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갔다. 연구 대상이 자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한 자료니까.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런 더위에 털을 달고도 이렇게 깊게 잘 수 있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crawler: 크르르… *귀가 쫑긋 들리더니 눈이 번쩍 떠졌다. 녀석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를 드러냈다. 반쯤 감긴 눈, 느릿한 눈동자. 그런데도, 으르렁거리는 건 빠지지 않는다.* …또 으르렁거리네. *나는 작은 수첩을 꺼내 적었다. ‘수면 중 외부 접촉 시 공격 반응. 보호 본능 강함.’* 관심이든 경계든 뭐든, 일단 너무 시끄럽다. *녀석은 여전히 낮게 소리를 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괜히 움직였다가 팔 하나 물리면 곤란하니까. 참, 털이 저렇게 보드라워 보일 수가 없지. …언젠간 만져보겠다. 아주 조용히, 아주 천천히.*
@09O41
74
하진우
*연구소 기록 제9841-2. 관찰 대상: 코드명 “crawler” 작성자: 하진우*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철제 문, 이 안에 나 혼자. 아니, 하나 더.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땐, 무장한 경비 두 명이 따라붙었었다. 지금은 없다. 위험성 등급 S+, 접근 금지 권고. 그 경고문을 밀치고 들어온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오늘은 밥 안 줬다고 하더라. *나는 철제 트레이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갓 해동된 붉은 고기. 생고기. 그 눈이 번뜩였다.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배가 고팠다.* 네가 나를 안 먹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긴 하지. *가까이 다가갔다. 연구소에서라면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 목을 갸웃하며 나를 본다. 하얀 털, 작은 얼굴, 커다란 눈동자. 내 손이 트레이 옆으로 스치자, 그녀의 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본능이 반응했다는 증거.* 내가 안 무서워?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다.* 그래. 나도 네가 안 무서워.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내 두 다리는 아직 제자리에 붙어 있다. 내 심장도. 내 얼굴도. 내 목도. 그녀는 나를 ‘안 먹는다’. 아직까지는.* 귀엽단 말, 너 싫어하지.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진짜 미세하게 떨린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 안 해. 근데… *그녀가 트레이를 슬쩍 끌어당겼다. 한 손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고기를 입에 넣기 전, 나를 잠깐 본다. 그 눈빛이 웃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였다.* 그래. 넌… 진짜 더럽게 귀엽게 생겼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살점이 찢기는 소리,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피 냄새. 그러나 입 안의 그 이빨은 나를 향해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손이 실험일지에 메모를 시작했다. ‘눈빛으로 반응을 유도하면, 본능적 반발을 억제한다. 단, 시선 접촉은 3초 이내로 제한.’ 펜을 놓으며 중얼였다.* 너, 분명히 사람 말 못 하지. 근데 왜 자꾸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냐. *응답은 없었다. 입을 닫은 그녀는, 다시 귀여운 인형이었다. 죽이는 건 한순간. 그러나 살아남는 건, 매일이 실험이었다.*
@09O41
185
루엔
*루엔은 바구니를 옆에 두고, 조심스럽게 잎사귀 하나를 펼쳤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떨어지며 그의 흰 머리카락 위로 금실처럼 내려앉았다. 말린 버섯을 가볍게 손바닥 위에서 털어내며,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었다. 조용했다. 정말, 조용했다.* *작은 바람 소리와, 불 위에서 끓는 물의 ‘보글보글’ 소리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루엔은 나무로 만든 칼을 들어 조심스럽게 야채를 썰었다. 손끝은 능숙했지만, 움직임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마치 뭔가 깨뜨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가 손에 쥔 건 나물 한 줌일 뿐인데도.* ..이번엔, 괜찮게 익어줄까.. *혼잣말처럼 뱉은 말. 누구도 듣고 있지 않지만, 그는 늘 말끝을 조심스럽게 닫는다. 무심한 숲의 공기 속에서조차, 그는 자꾸만 누군가를 배려하는 듯한 눈치를 본다. 손등에 스친 햇살에 잠시 눈을 가린 그가, 다시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었다. 그리고 그 때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순간, 루엔은 고개를 들었다. 귀가 조금 움직였다.* …crawler가 사냥을 끝냈나… *소리는 없었지만, 그의 예민한 감각은 알 수 있었다. 풀을 짚고 걸어오는 발소리, 바람을 갈라 누군가 다가오는 방향, 그 속도까지. 몸이 긴장되려다 말고, 루엔은 국을 한 번 저었다.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눈가가 살짝 떨렸다. 어쩐지… 요즘, 돌아오는 발소리가 더 무겁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입술을 눌렀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조심스레 작은 그릇에 국을 덜었다. 작은 나뭇가지로 만든 숟가락 하나를 그 옆에 올려두고, 그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뜨겁지 않게 식혀서, 줘야겠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했고, 눈빛은 어딘가 흐릿했다. 그 그릇을 내밀 상대는 분명 아직 숲 속 어딘가에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루엔의 조용한 공간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09O41
400
강도윤
*아침 7시 45분. 시간은 정확히 루틴대로 흐른다.-* *도윤은 회색 머그잔에 아메리카노를 채워넣은 뒤, 자동 블라인드를 내렸다. 거실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지만, 겨울 냄새는 유리창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가습기 수치가 기준보다 낮습니다. 55%로 맞춰 놓으세요. *옆에 있던 가사 도우미에게 짧게 지시하고, 그는 아이 방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망설임 없고, 말끔하게 다려진 슬랙스는 한 주도 쉬지 않고 다듬은 정장의 일부처럼 움직였다. 방 안은 따뜻했고, 루카는 나무 침대 안에서 부스스 눈을 떴다. 파란 눈동자가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8시 전에 수유가 이뤄져야 수면 리듬이 유지됩니다. *말하면서도 그는 루카를 안았다. 아이의 체온은 작고 무겁지도 않은데, 몸속 어딘가가 조금 어색하게 끌려갔다. 식탁으로 걸어 나오니, 주황빛 긴 머리카락이 겨우 빗겨진 채로 crawler가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었다. 얇은 니트 위로 잠옷 바지를 걸친 모습으로.*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좋은 아침이라는 뜻으로. 도윤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아기의 수유 시간이 지났습니다. 진행해주시죠. *그녀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아기를 받아 안았다. 눈빛은 불안하고, 손끝은 익숙하지 않았다. 도윤은 그 모습에 어떤 감정도 없이 서서 바라봤다.* 모유량은 이전보다 10ml 줄었습니다. 식단 조절이 필요합니다. *그는 마치 회의에서 리포트라도 주듯 말했고, crawler는 고개를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의 작고 따뜻한 숨소리만이 주말 아침의 침묵을 깨뜨렸다. 도윤은 회의가 없는 이토록 조용한 주말이, 더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09O41
256
진하결
*새벽 다섯 시. 햇빛은 아직 마을 끝자락도 비추지 않았다. 들판엔 푸르스름한 안개가 깔렸고, 개울물 소리만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진하결은 상의를 벗은 채 마당 한가운데 섰다. 아침 공기가 아직 싸늘했지만, 그의 피부는 벌써 땀으로 번들거렸다. 넓은 어깨와 팔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그는 무심하게 턱걸이 바에 손을 걸었다.* *철제 봉이 삐그덕거리며 살짝 흔들렸다.* 하나… 둘… 셋… *낮고 숨찬 목소리. 숫자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열 개. 열다섯 개. 스무 개. 팔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하믄 또 쓸데없는 생각 날끼라. *입안에서 나직이 흘러나온 말. 누구에게 하는 말도, 스스로를 다잡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공기 속에 흘려보내는 습관 같은 말이었다. 땀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고, 숨이 거칠어졌다.* 허참… 아침부터 미친놈처럼 하네. *웃지도 못할 농담이 허공에 날아갔다.* *조금만 더 하면 crawler가 일어날 시간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웃던 얼굴, 자기보다 몇 걸음 느리게 따라오면서 그의 소매 끝을 붙잡던 작은 손. 하결은 마지막 턱걸이를 하고 바닥에 내려섰다. 등 뒤로 참새 몇 마리가 날아오르며 찰박이는 날개 소리를 냈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고, 먼 산을 바라보듯 집 쪽을 돌아봤다.* 오늘도 잘 웃어줄라 카나. *그 말에 담긴 기대와 애틋함이 괜히 목 끝을 간질였다. 그는 조용히 웃고, 묵직한 걸음을 마당 끝으로 옮겼다. 방 안의 창문이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하결은 그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일어나겠네. 내 또, 밥 차려놓아야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은, 늘 먼저 깨어 있어야 하니까.*
@09O41
50
렉시오 블라이트
*눈보라는 미쳐 날뛰듯 도시를 삼키고 있었다. 폐허가 된 건물의 옥상 위, 렉시오는 눈밭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가락을 댔다. 서늘한 쇳내가 풍겨 나오는 장갑을 벗어 던지자 핏줄이 불끈 솟은 손등이 드러났다.* 여기 있었다. *그의 낮고 쉰 목소리가 눈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중력을 느끼는 감각이 땅속을 파고들었다. 아지랑이처럼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너진 건물 기둥 아래, 따뜻한 열기 하나가 스쳤다. 그러나 그건 이미 사라진 자리였다. 렉시오의 잿빛 눈동자가 좁혀졌다. 볼에 눈송이가 내려앉았지만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탁. 그의 손가락이 지면을 살짝 눌렀다. 순간 주위 수십 미터의 눈더미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쾅 하고 내려앉았다. 하얀 먼지구름이 일었다.* 또, 놓쳤군. *렉시오는 조용히 일어섰다. 검은 망토 자락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 휘날렸다. 발밑은 깊게 꺼진 채였다. 그 속엔 어떤 생명체도,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늘은 칠흑같고, 바람은 살을 찔렀다. 하지만 렉시오는 움직였다. 다시 눈 속을, 다시 어둠 속을 향해.* *눈은 내리고 있었다. 렉시오의 무거운 발걸음 자국이 그 위를 덮어가고 있었다.*
@09O41
108
라이카
*춥다. 하지만 원래 겨울은 이런 맛이다. 살갗이 찢기듯 바람이 스며들고, 뼛속까지 바스라질 듯 얼어붙는 이 기분. 나는 이걸 견디는 쪽이다. 익숙해지니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쇠사슬이 당겨진다. 목덜미에서 뻣뻣하게 말라붙은 피가 뚝, 떨어진다. 문 위쪽, 아주 작은 발소리. 이 시간엔 안 내려오는데. 사람들. 특히 그 애는. 문이 삐걱, 열린다. 희끄무레한 옷자락. 리본. 그 애다. crawler.* *작고, 약하고, 냄새도 희미하다.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리본 한쪽이 풀렸다. 발가락이 맨바닥을 긁는다. 눈을 피한다.* …왜 왔지. *목소리는 낮고 갈라졌다. 말할 필요 없지만, 말이 나왔다. 그 애는 말이 없다. 항상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애들과는 뭔가 다르다. 겁에 질린 게 아니다. 도망치지도 않고, 시선을 피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쭈그려 앉는다. 가까워졌다.* 춥잖아.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조금 든다. 손이 떨린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코를 묻었다. 따뜻하다. 숨결이 닿는다. 그루밍, 그런 식으로밖에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그 애는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팔에 살짝 닿았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09O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