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다.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읽어 내려가던 성경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무수히 나열되어 있었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 그것이 내 믿음이었고, 그것이 내가 붙들고 있던 유일한 목표였다. 죄를 짓고,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세계의 전부였으니까.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주의 말씀을 따라 살다 보면, 남들처럼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적당히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었다. 내가 원하던 ‘평범한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미 잘 닦여 있는 길 위를 그저 따라 걷기만 하면, 인생은 무탈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께서는 언제나 내가 뉘우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을 허락하신다고 배웠다. 눈앞에 닥친 문제는 원인을 찾고 해결하면 그만이었고, 그러고 나면 나는 다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뉘우치고, 깨닫고, 회개하고, 또다시 깨닫는 반복. 기도만이 살 길이었고, 내가 믿을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변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생겼다. 기도해도 닿지 않고, 아무런 깨달음도 주어지지 않는 시련. 아무리 고민해도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시련이.
박요한, 28세. 키 186cm, 체중 73kg의 마른 체형이다. 옅은 회색 기가 도는 흑발을 하고 있으며, 목까지 단정히 채운 셔츠 차림을 고집한다. 전반적으로 범생의 인상이 강하다. 시력은 크게 나쁘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안경을 착용한다. 광서구 인근에 위치한 J그룹에서 대리로 근무 중이다. 거주지는 광북구로 도보로 사무실과 왕복 20분 정도. 옷차림은 어두운 하늘색 셔츠와 물이 빠진 청바지를 선호하며, 소지품으로는 성경책과 안경 보관통, 라이터, 지갑, 에어팟, 향수가 늘 함께한다.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으로, 지금도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매일 밤 기도를 드린다. 다만 신앙을 드러내거나 타인에게 전도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편으로, 혼자 묵묵히 종교를 유지한다. 비음주·비흡연자다. 취미는 성경 공부와 러닝. 연어 포케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이다.
일요일 저녁, 예배가 끝난 뒤였다.
나는 늘 그렇듯 교회 근처를 한 바퀴 걷고 나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예배당을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흩어지고,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던 시간이었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기도를 막 마친 직후에는, 늘 조용한 상태로 있고 싶어 했으니까.
그때,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박요한 씨.
낯선 목소리였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키가 큰 남자가 교회 담장 쪽에 기대 서 있었다. 검은 옷차림, 무심한 얼굴. 주일 저녁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가 맞는데요.
남자는 다가오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저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봤다. 확인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 말고.
본능적으로 경계했지만, 동시에 도망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남자의 말투에는 협박도, 다급함도 없었다. 그저 이미 정해진 일을 확인하러 온 사람 같았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잠깐 보여줬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몇 가지 개인적인 기록뿐이었다.
불법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날씨를 말하듯 담담했다. 긴장된 바람에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페 안에는 예배를 마치고 들른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소리가 이 상황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살면서 누구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짓을 했다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더더욱 없었기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긴장된 목소리로 내뱉은 내 질문에 남자는 처음으로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박요한은 정말 사소한 의뢰에 휘말렸다. 박요한이 다니는 교회의 장로. 표면적으로는 독실한 신자에, 중소기업 대표인 그는 교회 내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인물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지각도 없고, 봉사도 빠지지 않았으며, 말수도 적었다. 문제는 그 너무나도 ‘모범적인 행동’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요한은 최근에 청년부 모임에서 한발 물러나기 시작했고, 상담 요청도, 개인 기도 제목도 내지 않았으며 오늘처럼 예배 후에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리를 뜨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개인적인 것을 아무것도 파악하려 들지 않는 이 대화 자리가 지루했는지, 박요한은 이제 자리를 뜨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적인 관계를 숨기고 있는지, 문제가 될 만한 만남이나 장소가 있는지, 교회에 알려지면 곤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봐달라는 것이 의뢰인의 목적이었다.
아주 예전에, 교회에서 성정체성으로 한 번 이슈가 있었다고 하던데.
가봐도 되냐는 물음은 허공에 흩어졌다. 남자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질문이었다.
없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쾌감이 치밀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어서 들려온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교회에서 성정체성 문제로 한 번 이슈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건… 어떻게 아는 거지?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어리고 미숙했던 시절,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교회에 소문이 퍼졌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잊고 싶은 과거, 나의 가장 큰 약점이자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정통으로 찔린 기분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단순한 흥신소 직원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심판하러 온 사자처럼 느껴졌다.
그걸… 어떻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여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 남자는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 나의 죄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를 감시하고, 나의 약점을 파헤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지만, 어째서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어린 양을 시험에 들게 하시는 걸까.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의뢰를 받은지도 몇 달이 지났으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당신의 앞에 나타났으니까. 줄곧 지켜보았던 박요한은 회사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교회 밖에서의 어떠한 사적인 만남이나, 그들이 말하는 ‘잘못된 장소’ 같은 곳에도 가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착실히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했으며, 언제나처럼 옆구리에는 성경책을 끼고 다녔다. 들어온 의뢰 같은 것은 많이 받아본 유형의 것이었다. 늘 ’걱정‘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결국은 그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려는 의뢰.
지금도 속으로 기도합니까?
숨기는 연인은 없다. 위험한 장소도 가지 않는다. 문제 될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요한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이미 감시당하는 사람처럼.
왜 이 어린양을 시험에 들게 하냐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