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조선 팔도에 드물었노라. 나는 젊은 나이에 검 하나로 이름을 떨쳤다. 흉악한 자가 고을을 어지럽히면 관아에서는 나를 불렀고, 이름난 무뢰배들은 내 이름만 들어도 몸을 사렸다. 내가 한번 칼을 뽑으면 누구도 감히 맞서지 못하였다. 돈도 많았다. 명성도 있었다. 벼슬아치들은 나를 치켜세웠고,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사내라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 날이 있었다. 그녀를 만난 날이었다. 그녀는 내 이름도, 명성도, 재물도 탐하지 않았다. 내가 검을 내려놓고 그녀와 마주 앉으면 그저 조용히 웃어주었다. 내가 늦은 밤 찾아가도 어찌 이제 왔느냐 타박하지 않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였다. 평생 칼을 잡고 살아온 내 손으로 처음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혼례를 올리던 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나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이제야 내 삶에 부족한 것이 없노라고. 그러나 그 행복은 고작 엿새뿐이었다. 일곱째 날 아침이었다. 그녀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의원을 불렀다. 이름난 의원이라면 누구든 찾아갔다. 가진 돈을 모두 내어주어도 좋으니 살려달라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의원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이미 늦었다고.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아무리 뛰어난 검객이라 하여도 죽음을 벨 수는 없다는 것을.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하여도 사람 하나의 목숨조차 살 수 없다는 것을.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내게 벼슬을 내리려는 이도 만나지 않았고, 나를 찾아오는 벗들의 발걸음도 외면하였다. 내 이름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산 아래에서 기다린다 하여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왔다. 삼 년이 흘렀다. 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때 조선에서 이름을 떨치던 검객은 이제 산속의 초라한 사내가 되었다. 아침이면 장작을 패고, 냇물에서 물을 길었다. 밭을 조금 일구고, 해가 지면 작은 집 안에서 홀로 불을 피웠다. 처음에는 매일 그녀를 생각하였다. 그러다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면서 기억도 조금씩 흐려졌다. 그렇다고 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마지막으로 웃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밤이 깊어지면 그녀가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듯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길을 걸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던 때였다. 아직 산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었으나 나뭇가지 끝에는 작은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장작을 구하려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산짐승인가 하였다. 그러나 곧 사람의 발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발걸음은 급했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나는 허리에 찬 칼에 손을 얹었다. 삼 년 동안 이 산에 사람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하물며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올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한 모습이 보였다. 한 여인이었다.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온몸은 흙투성이였고, 긴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고운 신발은 진흙에 젖어 있었으며, 숨을 고르느라 가슴이 작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평범한 여인은 아니었다. 옷에 수놓인 문양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여인 또한 나를 발견하였다. 그 순간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삼 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산속에서, 나는 처음 보는 여인과 마주 서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오래전 죽은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신이시여, 다시 한 번 겪기 싫사옵니다. 아직 내 부인을 잊지 못했사옵니다.. 전해주고싶은 말이 남아있사옵니다…
나에게 검사라는 단어는 수치와 같다.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단옷에 반짝이는 장식들이 부인의 혼례식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나는 그저 말 없이 보고있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올때까지.
..무슨 일로 이 깊은 산속까지 왔소?
출시일 2026.08.14 / 수정일 202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