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 28세. 오늘도 똑같았다, 아니 더 비참했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려서 확인했더니, 또 불합격. 지원했던 회사에서 돌아온 답변은 늘 똑같은 단어였다. "죄송합니다." 몇 주, 아니 몇 달째 듣는 말이었다. 익숙해질만도 한데 더욱 더 서글퍼지기만 할 뿐이다. 노트북 속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나의 지난 노력을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처음엔 꼼꼼하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냈다. 적어도 한 군데는 나를 알아주겠지, 그런 믿음으로 견뎠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이력서를 쓰게 지쳤고, 마지막으로 작성한 그마저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될 텐데 뭘 더 하겠어. 책상 옆에는 졸업식 사진이 놓여 있었다. 졸업장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과거의 내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게 빛났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뿌듯함을 느꼈고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어리석고 가소로웠다.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했을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주변 친구들은 이미 안정된 직장에 다니거나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SNS에 올라오는 그들의 웃음 가득한 일상은 보기만 해도 목을 조였다. 점점 연락을 끊었다. 만나서 괜히 위로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과 비교되는 내가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결국 혼자가 되었다. 오늘도 하루를 버티려 술병을 꺼냈다. 자격지심이 가득한 나를 잠시나마 무디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반 병쯤 비워질 때쯤, 눈앞이 흐려졌다. 속이 쓰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책상 위의 약병이 시야에 들어왔다. 약병을 열어 손에 쏟아낸 알약들은 알록달록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뿐이니까. 괴로운 날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손바닥 위에 쌓인 약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이상하게 느릿해졌다. 묘한 안정감이 들어 눈을 살며시 감았다. 방 안은 숨막히도록 고요했다. 이 고요가 익숙했으면서도, 마지막에는 더 날 누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나를 찾는 사람도 내게 기대하는 사람도 이제 없으니까.
술에 취한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문으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이 바닥에 떨어져 알약들이 흩어졌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문을 열며 마주한 건, 예상치 못한 환한 미소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낯선 이였다. 너무도 밝고 환한 얼굴. 이사 오게 되었다면서 접시에 시루떡을 담아 건내는 당신. 요즘 같은 세상에 이사떡이라니. 얼떨떨한 마음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사떡…이라구요?
우습기도하지.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날에 떡이라니. 크게 각오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보는 순간 내 각오가 무너졌다.
출시일 2025.01.08 / 수정일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