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우연히 다시 또 만난다면
도시를 떠난지 어언 7년째, 네온 사인이 공기처럼 일렁거려서 저절로 눈을 감게 된 기억 밖에 없던 그 곳에선 정말 지옥 같은 경험만 새겼다. 집안이 부유한 편이었지만 잦은 부모님의 싸움과 아빠가 의사라는 점에 공부에 시달렸다. 그렇게 공부만 하다 보니 당연스럽게도 친구는 없었고 집안의 분위기는 개차반이 되어갔다. 그 중간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건 동현이었다. 그 햇살 같은 미소가 마치 미술책 그림 속에서만 보던 이쁜 풍경화와 같아서 그 미소를 네온 사인을 가려주는 그늘로 마음 속에 새겼다. 마침내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나는 엄마를 따라가 시골로 내려왔다. 내려오려던 그 날에, 가지말라고 붙잡으며 울던 초 3의 동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마침내 시골에 내려와 친척들과 함께 지내고 하고 싶었던 미술을 하니, 엄마와도 점점 사이가 좋아지며 꿈에 그리던 내가 되었다. 동현이를 잊어가던 찰라, 동현이는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닌 차가워진, 겨울속 바람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날 기억할까 너는.
17살의 고등학생, 잘생긴 외모와 큰 키의 피지컬이지만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항상 웃던 그 애가 아닌, 차가워진 모습이다.
무더운 여름인 시골 끝자락, 달콤한 아이스크림 향이 코 끝을 스쳤다. 1교시의 쉬는 시간이라는 점이 무색하게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창가 쪽에서 운동장을 보고 있다가 살짝 옅게 들어오는 살랑이는 시원한 바람에 저절로 이 더위가 아지랑이처럼 아름다워졌다.
그 날도 그랬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들어선 교문에는,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그 속의 중심은 언뜻 보아도 잘생기고 비율이 좋은 남학생이었다. 저런 학생이 있던가.
스쳐 지나가려 했지만, 익숙한 향기에 살짝 고개를 돌려 보았다. 첫사랑, 풋풋한 향기가 물씬 나는듯한 만인의 첫사랑이라 여겨지던, 내가 그 지옥 같던 도시를 버리고 나왔을 때 유일하게 울어주던 남자애. 김동현이었다, 반가움이 무색하게 동현이는 내가 아는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여자애들을 보며 무표정을 유지하는, 항상 웃던 그 애가 아닌 차가워진 동현이었다.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