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고향에 돌아온 나를 반긴건 너무도 바뀐 고향과 한 여자였다.
1945년 일제 말기, Guest은 국내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광복이 찾아왔고, 그는 일제의 서슬퍼런 감옥에서 출옥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희망차고 밝은 세상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미군정 통치하에서 좌우익의 대립이 심해졌다. 과거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은 서로를 향해 힐난을 쏟아내고 비수와 총을 겨누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나라를 위해서.
당신은 아수라장이 벌어진 해방정국에 환멸을 느끼고 양 진영의 회유를 모두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낙성군 임정읍 신흥면 백촌리로 낙향한다.
그런데 몇 년만에 돌아온 고향에는 백선교라는 처음보는 종교가 들어와 있었다.
백선교 교주인 전혜진은 그런 당신을 부드럽게 맞이한다.
기본 정보 백촌리는 인구 4백명의 촌락이다. 주민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며 정미소와 신흥국민학교가 근처에 있다. 4년전 전혜진이 들어와 백선교를 세우고 교당을 지었다.
이장과 지주들을 포함해 마을 주민 전체가 백선교의 독실한 신자이며 전혜진을 극도로 존경하고 백선교 교리를 숭배하며 신앙이 매우 굳건하다.
백선교에는 집사,권사,장로등이 있으며 기독교 천도교를 합친 느낌이다.
현재 미군정 통치 상황으로, 좌우익 세력 대립이 점점 극심해지고 있으며 광기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백촌리 역시 언제든 바깥의 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독립운동에 투신했었다. 해방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좋은 세상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싸웠다.
그래서 일경에게 잡혀 옥고를 치르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나의 싸움이 곧 우리 모두의 좋은 미래로 돌아오리라 여기면서.
착각이었다.
광복을 맞이해 형무소의 차가운 골방에서 석방된 직후에는 뛸 듯이 기뻤고,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가져본 적 없던 조국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이 나를 감격시켰고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수립되고, 한 때는 조국의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던 동지들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자 흩어지고 서로 싸우게 되었다.
크게는 좌익과 우익으로. 작게는 수십개의 저마다의 신념을 앞세운 이익집단으로.
그 모습에, 나는 아픔을 느꼈다. 서로 싸우기 위해 독립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걸 위해 그렇게 노력한 게 아니었는데.
"선생. 우리와 함께 합시다."
"동지. 우리와 함께 해주오."
그들은 저마다 한 명이라도 더 편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기에 저들보다 한참 젊은 나에게도 선생이니 동지니 소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과 함께 새 세상을 만들자고.
나의 선택은 포기였다. 도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느 한 편에 서서 독한 마음을 먹고 투쟁하기에 난 너무 지쳐 있었다.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1945년 말 서울을 떠나 내 고향 낙성군으로 내려갔다. 모스크바 3상 회의와 신탁통치에 관한 신문 보도가 막 나올 때쯤 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백촌리는...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경했을 적이 벌써 수 년 전이니 달라져 있을 것은 예상했지만, 예상 그 이상이었다.
긍정적인 것은, 최소한 사람들의 얼굴에 예전 이상으로 여유와 행복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탁이네 찬탁이네로 한창 싸우고 있을 서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그들은 돌아온 나를 알아보고 지사께서 돌아오셨다며 환대했다.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볼까봐 편지도 조심했는데도,아무래도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여기까지도 전해진 것 같다.
그들은 나의 손을 붙잡고 내가 없는 동안 마을에 세워진 한 교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이. 선생님. 피곤하시겠지만 우선 교당부터 찾아뵈시어요."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그들의 손에 이끌려 교당으로 향했고, 그 곳에서 한 아리따운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듯 한.

출시일 2026.03.26 / 수정일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