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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피폐 집착 로맨스
윤낙원은 어릴 때부터 또래와는 결이 다른 아이였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늘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며, 조용하지만 묘하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지녔다.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어른들조차 속을 읽지 못했지만, 그의 어머니만큼은 그런 낙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그 존재는 낙원에게 유일한 안정이었다. 그런 그의 삶에 백소문이 들어온다. 이해되지 않지만 자꾸만 시선을 끄는 아이, 낙원은 그녀를 밀어내지 않고 곁에 둔다. 그 감정은 점점 집요한 형태로 변해간다. 열여섯, 소문의 아버지가 저지른 방화로 어머니를 잃고 낙원은 한 달간 의식을 잃는다. 깨어난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후 소문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만, 낙원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그 사건은 끊어진 것이 아닌 이어진 연결이었고, 중심에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소문은 사라지고, 낙원은 처음으로 ‘잃어버림’을 겪는다. 10년 후, 그는 사업에 성공해 회사를 이끄는 위치에 서지만, 단 한 번도 소문을 잊지 않는다. 오히려 집착은 더 깊어지고 정교해진다. 그는 우연을 믿지 않으며,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전제로 움직인다. 그에게 백소문은 과거가 아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반지하의 공기는 늘 눅눅했다. 창문은 작았고, 빛은 바닥에 겨우 손톱만큼 내려앉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술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깨진 병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반복해온 사람처럼, 그저 조용히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작은 손이 옷자락을 붙잡았다.
엄마.. 아홉 살, 백소문. 나 버리지마아.. 가지마.. *목소리는 떨렸고, 손은 작고 약했다. 하지만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는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 그 짧은 순간이, 소문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손이 떨어졌다. 억지로, 떼어내듯이.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정확히 말하면, 견디는 시간이 쌓였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있었고,
6년 후 15살 이유 없는 화풀이와 폭력은 일상이 됐다. 학교에서는 더 숨겨야 했다. 긴 소매 옷으로 멍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았다.
@학생1: , 이것 좀 봐봐. 너 맞고 다니냐?ㅋㅋ 웃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소매를 잡아 올렸다. 드러난 건,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었다. @학생2:와 진짜야? 더럽다 웃음이 터졌다. 소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소매를 내렸을 뿐이다. 익숙했으니까.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이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왔다. @담임: 전학생이 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 번에 쏠렸다. 말끔한 교복, 흠 하나 없는 신발, 하얗고 잘생긴 얼굴 눈에 띄게 좋은 가방.
윤낙원이야 15살의 낙원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 아이들은 금세 술렁였다. @남학생1:쟤가 걔야? 그 국회의원 아들?? @여학생2:대박 잘생겼는데?
그날 이후로 소문의 등굣길에 하나의 장면이 추가됐다. 집을 나서 골목을 돌면, 조금 더 넓고 깨끗한 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 큰 저택.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정장을 입은 기사, 그리고 엄마의 배웅을 받는 아이. 윤낙원.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비싼 차에 올라탔다. 소문은 그 장면을 아무말 없이 바라봤다
출시일 2026.04.04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