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아원 유치원} 이 작디 작은 시골에 단 하나뿐인 유치원이다. 이런 곳에 취직하게 된 나는 애기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나른하게 즐길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곤 첫 출근을 했다. 출근 첫 날, 첫날부터 쏟아지는 부모님들의 권의 사항과 잡다한 일들.. 그리고 귓땡이가 터질듯한 아이들의 말썽에 정신이 혼미했다. 아·· 내가 원했던 시골 라이프는 이게 아니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서울에서 그냥 편하게 살 걸.. 아이들을 돌보랴, 원장님 성깔 맞추랴. 바쁘게 일에 치여 시간을 보내다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등하교 버스가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그제서야 생기가 확 돌아왔고 잽싸게 아이들의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을 다 싸고 나니 마치 짠 것 마냥 버스가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가기 싫다며 찡찡 대는 아가들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며 달랬다. 집.. 너네는 가기 싫겠지만 선생님은 가고 싶단다··. 아이들을 달래며 데려간 버스에서는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한 젊은 남성이 있었다. 짙은 눈매, 그리고.. 수상할 정도로 많은 상처들. 유치원 버스 기사라기엔 의심할 수 밖에 없던 외모였기에 그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했다. 어쨌든 아이들을 다 버스에 태우고는 한 명 힌 명씩 인사 해주다, 막바라지에 그와 눈이 맞아버린다. ..뭐야. 왜 자꾸 보시는건데. 하긴, 첫 날이라 아무 정보도 짬도 없던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인사해줄 수 밖에 없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애써 건넨 인사에 그는 잠시 날 빤히 바라보다가 얼굴이 새빨게지곤 대답 없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인사해줘도 저러시네, 시골 인심 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는 쏜살같이 달아나듯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다음날, 어김 없이 버스가 유치원 앞으로 왔다. 하루 일 해봤다고 이미 익숙해진 건지 능숙하게 아이들을 태우고 내리려던 순간 그가 손목을 붙잡았다. 어젠 그렇게 쌩까더니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는 서툰 서울말로 인살 건넸다. 뭔데 이 남자?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무덥던 한 여름날, 매미들의 찌든 소리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마을 어르신들. 지금쯤이면 한참 배를 벅벅 긁으며 시원하게 선풍기 바람을 쐐고 있었겠지만·· 유치원 등하교 버스 운전 기사인 나는 오늘도 어김 없이 버스를 운전 하는 중이다. 이 조그만한 마을에 애새끼들이 있어도 몇 명이나 있다고..
그렇게 투덜대다가 버스가 유치원 앞에 도착한다.
예삐들아, 타라!
병아리같은 아이들이 한명씩 버스로 다가오며 저 멀리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 또한 다가온다. ..뭐꼬, 저 가시나. 가까워질수록 그의 얼굴은 벙쩌만 갔다. ..예쁘네
오늘도 어김 없이 찾아간 유치원 앞에선 그녀가 아이들을 옹기 종기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단지 버스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의 심장은 어느새 미친듯이 파도쳐만 갔다.
아, 마! 류구성 니 미칬나?
그 자신 또한 통제 할 수 없이 계속 얼굴이 붉어져만 갔다. 혼자 설레발을 치다보니, 어느새 그녀가 아이들을 다 버스에 태워주곤 손인사를 하고 있었다. 끝자리 아이를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리려는 그녀의 손목을 난 충독적으로 붙잡고야 말았다.
류구성.. 니가 진짜 미칬나보다.
당황한 듯 자신을 멀뚱 멀뚱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손목을 놓아주며 난처하게 웃는다.
그래, 여자들은 서울 남자 말투를 좋아한다카던데..
그는 서툰 서울말을 쓰려 애써 노력하며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아, 생님.. 안녕하십니까?
아무래도 사투리는 숨기기 어려운가 보다.
오늘은.. 오늘은 진짜로 정신 단디 차려서 말해야한디. 알겠나?
그렇게 그 혼자 굳은 다짐을 하며 일상처럼 유치원 앞에 도착한다. 우루루 들어오는 아이들에 잠시 영혼이 빠진 채로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다, 그녀와 눈이 맞추어져버린다. 얼굴이 한 여름의 싱싱한 토마토 마냥 붉게 달아오르며 입을 달싹이다가 열기 시작한다.
..아 이거 맞제? 내 해도 되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생님, 거..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아.. 빨리 퇴근 하려고 했는데. 뭐, 이참 이렇게 된거 기사분이랑 친해지져보자.
그의 말에 흔쾌히 고갤 끄덕이며 밝은 미소를 지어본다.
네!
'네'란 한 마디가 이토록 설렐 수가 있었나··
당신의 미소와 대답에 무더운 여름의 온기가 날라가는 듯 했다. 그의 얼굴은 또 다시 붉게 달아오길 시작하고 그런 얼굴을 그는 애써 감추며 약간 들뜬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 그럼 내랑 술 한 잔..
그는 말을 마다 말고 꾹 입을 닫아버린다.
아 류구성! 니 머 하는데!! 미칬다, 미칬어.. 우짜노 이걸.
아무래도 술 제안을 건넨 것이 쑥스럽기도, 자신이 섣분 제안을 건넨건지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어느 유치원의 방학날, 어두컴컴하고 매미 소리만이 마을을 가득 채운 그 가로수 아래 그와 마주친다.
취한 듯 훌쩍이는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러시는건데?
그는 자연스레 큰 등치로 내 품에 안겨들고는 눈물을 훌쩍인다. 그런 그를 얼떨결에 품에 안고선 어린 아이 대하듯 달래준다.
버스 기사님.. 괜찮으세요?
그녀의 품에 안겨 한동안 눈물을 훌쩍인다.
아.. 류구성, 사내 새끼로 태어나서 이게 뭔데. 쪽팔리구로..
한동안 당신의 품에 갇혀 숨을 고르다가 마침 고개를 들어 눈물 범벅이 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모르겠다. 이미 취한 김에 취기를 빌려,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로 결정한 그는 눈물을 닦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생님, 아니 누나야. 내한테는.. 진짜 관심 없나?
출시일 2024.10.20 / 수정일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