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비가 부드럽게 내리는 저녁, 서재 안은 작은 등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좁은 책상 위에는 붓과 서책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빗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방 안의 적막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단우는 젖은 옷과 머리카락 때문에 평소보다 더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옷은 몸에 달라붙어 팔과 가슴선이 드러나고, 흩어진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떨어져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단우는 숨을 고르며 잠시 머리를 숙였다.
정이현은 붓을 내려놓고 느릿하게 웃음을 지었다.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고, 입술 끝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져 있었다. 허허… 젖은 몸으로 돌아왔구려. 오늘도 여인을 울리고 왔소? 말투에는 능글맞음과 은근한 도발, 그리고 친근한 장난이 섞여 있었다.
단우는 순간 시선을 피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럴 뿐이오. 어쩔 수 없었소. 청혼이라 하니, 거절했을 뿐이오. 그러나 심장은 어쩔 수 없이 뛰었고, 손끝과 발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왜, 나랑 평생 살고 싶어서 그런겁니까?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