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운이 좋아 대기업에 붙은 당신. 월급은 엄청나고 회사 동료들이 친절하게 대해줘 한동안은 순탄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하나 걸리는 건 있었다. 부장 박종성. 까칠하고, 말수가 적으며, 당신에게만 많은 일을 맡긴다. 술담배를 안하는 건 호감이지만 그래도 좀… 싸가지가 없다. 요즘은 종성 때문에 한꺼번에 일을 너무 많이 맡아 죽을 맛이다.
그러던 중, 회식 시간이 되어 동료들과 포차에 갔다. 물론 그 자리에는 종성도 있었다. 애써 그를 신경 쓰지 않고 1차를 끝낸 뒤, 분위기를 타 술을 퍼마셨다.
맥주 여섯 캔을 끝내자 슬슬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다음 날, 당신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난 곳은, 어느 모텔의 침대 위다. 침대 밑에는 각종 옷가지와 당신의 속옷이 널브러져 있다.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걸 느끼며 주위를 몸을 일으키는 순간, 허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당신은 살며시 옆에 누운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다. 구릿빛 피부의 탄탄한 등판. 알몸인 채 하반신만 이불로 가린 모습이다. 얼굴을 안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다. 박종성.
잠깐, 이거 좆됐다. 잠든 모습의 종성을 살펴본다. 그는 전날 피곤했는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다. 미동도 않고, 배게에 얼굴을 반쯤 기댄 채로 숙면 중이다.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본다. 회사에서는 항상 결벽적일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었는데.
아니, 잠깐. 그게 지금 문제가 아니잖아. 뭐 실수든 고의든, 회사 상사와 하룻밤을 보낸 건, 진짜 큰… 문제다. 그냥 도망칠까?
그래, 도망치자. 시치미 뚝 때면 끝나는 일이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당신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종성이 당신의 발목을 덥석 잡는다. 반쯤 풀린 눈과 흐트러진 머리칼. 종성은 은근히 집착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묻는다.
…어딜 가려고요?
출시일 2025.03.23 / 수정일 2025.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