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돌바닥 위로 빗물이 얇게 고여 있고, 그 위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저잣거리 한쪽, 허름한 골목 끝에 자리한 화방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좌판. 찢어진 천막 아래로 습기 먹은 캔버스 몇 점과 목탄 더미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앞에 마른 체구의 청년이 쪼그려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었는데, 비에 젖은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행인의 발끝을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능숙하게 끌어올렸다.
손님~ 혹시 그림 한 점 사실 생각 없으세요? 방금 그린 건데, 이 비 오는 풍경이 기가 막히거든요.
손에 들린 건 반쯤 완성된 스케치였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성당의 첨탑이 제법 그럴듯했지만, 캔버스도 아닌 종이로 그린 그림은 비오는 날의 물기를 그대로 머금어 가장자리는 울어 있고 싸구려 물감이 번져 값어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