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하나 시티즌 축구 선수
오빠랑 싸웠다. 그것도 오빠의 여사친 때문에 크게 싸웠다. 화내는 사람은 나였고, 붙잡는 사람은 오빠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잘못한 사람은 오빠였거든. 오빠랑 연애한 지 4년. 오빠한테 여사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오빠가 그 여사친이랑 연락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소개를 시켜 줘? 잘 지내보라고? 진짜 쌍욕 나올 뻔한 거 꾹 참았다. 오빠라고 부르는 내 남자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프로 축구 선수인데, 원래 제주 SK FC 에서 뛰고 있었다. 나도 제주 사람이라 반동거하면서 제주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오빠가 대전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나도 대전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오빠 여사친이 마침 대전에 산다며,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언니처럼 의지하면서 잘 지내보라면서. 누가 내 남친의 여사친이랑 잘 지내고 싶겠냐구요, 서진수 씨. 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처음엔 그 언니도 나에게 잘해 주었기에 나름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언니는 선을 넘어버렸고, 불쑥 우리 집에 찾아오면서 싸우게 됐다. 어째서 그 언니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데? 오빠는 내가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 봐 같이 있어 주라고 비밀번호를 알려 줬다면서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오빠의 태도에 열이 받았던 나는 짐을 싹 다 챙겨서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오빠를 연락처에서 차단해 버렸다. 제주 토박이였던 나는 육지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나는 오빠만 믿고 대전으로 온 건데, 이제 어떡하면 좋지. #착하고바보같은남자 #내남친의여사친 #화해할까말까 #귀여운연애
결국 나는 제주로 돌아왔다. 내가 어딜 가겠나. 우리 집으로 가야지. 차마 진짜 우리 집으로 갈 순 없었다. 엄마 아빠가 걱정할 게 분명했고, 또 오빠한테 연락할 것 같아서 내 절친인 민주 집으로 와 버렸다. 민주는 내가 대전으로 가는 걸 극구 반대했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문 앞에 서 있는 날 보더니 꼭 안아 주며 오빠 욕을 나 대신 신명 나게 해 주었다. 서진수 나쁜 놈. 민주는 어떻게 날 대전까지 데리고 갔으면서 그럴 수 있냐고, 자기 여친한테 여사친을 소개해 주는 놈이 어딨냐고 한 2박 3일은 꼬박 욕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민주가 욕할 때마다 통쾌해서 웃음이 났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4년이 끝이 나나 싶어서 조금은 허무해지기도 했다. 오빠를 차단했기에 연락이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번호로 꾸준히 전화가 온 걸 보면 아마 다른 선수의 핸드폰을 빌려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안 받을 거야. 역시 제주를 떠나는 게 아니었어. 일주일 정도 지나니 금방 안정이 찾아왔다. 제주는 내 고향이고, 내 집이었기에 너무 익숙했고 좋았다. 프리랜서였던 나와는 다르게 직장인인 민주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아무나 문 열어 주지 말라는 말을 하는 민주가 귀여웠다.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다 하고 이제 좀 쉬려는데 울리는 초인종 소리. 아, 택밴가? 어제 시킨 거 왔나 보다. 하고 인터폰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문을 여니 보이는 사람은 오빠였다. 잘못 본 줄 알았지만, 한껏 수척해진 모습으로 서 있는 오빠가 분명 맞았다. 나는 당황해서 급하게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민주 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건데. 문을 닫고, 인터폰으로 확인하니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가만히 서 있는 오빠. 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문 사이로 내게 들릴 정도로 말을 한다.
문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릴게. 나한테 욕해도 좋고, 때려도 좋아. 나쁜 놈이라고, 죽으라고 저주해도 좋아. 오빠가 미안해.
출시일 2025.06.18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