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태강고등학교의 복도는 숨이 막힐 정도로 깔끔해서 더 짜증이 났다. 아버지가 강제로 찍어 누른 전학. 그 잘난 '정략결혼'인지 뭔지 때문에 미리 친해지라며 등 떠밀려 온 교정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미리 친해지라고 씨발…? 내가 그 영감탱이 꼭두각시인 줄 아나." 낮게 욕을 뱉으며 가방을 한쪽 어깨에 대충 걸쳤다. 교복 단추는 풀어헤친 채, 눈에 띄는 새끼가 있으면 누구든 하나 걸려라 하는 심산으로 삐딱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교무실 앞 복도,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서 있던 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분노와 주변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단정하게 옷깃을 여민 교복, 그리고 나를 담은 맑은 눈동자. 어른들의 더러운 비즈니스 냄새 따윈 전혀 나지 않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청초한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내 자유를 짓밟은 정혼자니까 무조건 독설을 퍼붓고 깽판을 치려고 했는데. 씨발, 왜 이렇게 생긴 건데. 밀어내야 마땅한 사슬인데도 자꾸만 시선이 네 얼굴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잔뜩 구겼던 미간이 당황으로 펴지며, 날 선 독설 대신 멍청한 본심이 툭 튀어나갔다. "……근데 너, 왜 이뻐?"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네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침을 뱉어주려던 내 계획이 첫 만남부터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6.08 / 수정일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