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사람을 주웠다.
정확히는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비가 막 그친 뒤였다. 축축해진 돌계단을 밟아 산허리를 오르는데, 머리 위에서 솔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피하려 고개를 틀자 이번에는 정확히 정수리를 노리고 두 번째가 날아왔다.
손으로 잡아낸 뒤 올려다보니 소나무 가지 위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장발을 높이 올려 묶었고, 남은 머리칼은 허리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검은 무복 위에 흰색 겉옷을 대충 걸쳤는데 소맷자락은 찢어져 있었다. 칼은 등에 멨고, 입에는 이름 모를 풀줄기를 물었다.
정파의 제자치고는 앉은 꼴이 형편없었다.
◆ “두 번째 것도 잡았네.”
남자는 웃으며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젖은 흙바닥에 내려서면서도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 “보통은 첫 번째에 위를 보고, 두 번째에는 이마를 맞던데.”
◇ “세 번째를 던졌으면 네 이마에 박아줬을 거야.”
◆ “그것도 궁금한데.”
그가 정말로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칼자루에 손을 얹고서야 남자는 아쉽다는 듯 빈손을 내보였다.
◆ “없어. 솔방울이 다 떨어졌어.”
◇ “목숨도 곧 떨어지겠군.”
◆ “말이 좀 심하네. 길 물어보려고 했는데.”
◇ “길을 물을 때 남의 머리에 솔방울부터 던지는 분파가 어디지?”
◆ “창명검문.”
남자가 가슴께에 달린 은색 패를 들어 보였다. 산동 일대에서 이름난 정파였다. 검법이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어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다. 특히 현 장문인의 셋째 제자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신은 패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 “위조품은 그럴듯하네.”
◆ “진짜야.”
◇ “창명검문의 제자가 길도 모르고 산에서 헤매?”
◆ “길은 알아.”
◇ “그럼 왜 물어봐.”
◆ “그쪽이 어디 가는지 알고 싶어서.”
남자가 너무 당당하게 답해서 당신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당신 허리춤에 달린 작은 목패를 내려다보았다. 문양은 옷깃으로 반쯤 가렸지만 이미 알아본 모양이었다.
◆ “만독곡?”
◇ “알면서 물었군.”
◆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만독곡 사람들은 가까이 가면 풀도 죽는다던데.”
◇ “확인해볼래?”
◆ “응.”
대답이 너무 빨랐다.
남자는 한 걸음 다가왔다. 당신이 물러서지 않자 이번에는 고개를 숙여 목패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휘었다. 경계심이라고는 없는 얼굴이었다.
당신은 소매 안에 숨긴 독침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 “거기서 더 오면 죽어.”
◆ “몇 걸음까지 괜찮은데?”
◇ “한 걸음도.”
◆ “이미 세 걸음 왔는데 멀쩡하잖아.”
◇ “네가 운이 좋았던 거지.”
◆ “그럼 네 번째도 시험해봐야지.”
그가 발을 내딛는 순간 독침이 날아갔다.
남자는 고개를 비틀어 독침을 피했다. 검을 뽑지도 않았다. 침은 뒤편 소나무에 박혔고, 닿은 부분부터 나무껍질이 검게 변했다.
그제야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 “진짜 독이네.”
◇ “장난인 줄 알았어?”
◆ “조금.”
그는 검게 썩어가는 나무를 구경하러 갔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려 하기에 당신이 미쳤냐고 묻자, 남자는 손을 거두며 웃었다.
◆ “안 만져. 나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 “그 정도보다 더한 바보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 “나 강진휘.”
묻지도 않은 이름이 돌아왔다.
창명검문의 셋째 제자. 호랑이 한 마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다만 본인은 호랑이가 아니라 삵이었다고 정정하고 다녔다. 삵을 잡은 것치고 소문이 지나치게 커졌는데도 딱히 억울해하지는 않았다.
당신이 이름을 밝히지 않자 강진휘는 멋대로 당신을 ‘독쟁이’라고 불렀다.
◆ “독쟁이는 왜 이 산에 왔어?”
◇ “약초 캐러.”
◆ “거짓말.”
◇ “근거는?”
◆ “약초 캐는 사람치고 바구니가 없잖아.”
◇ “품에 넣으면 돼.”
◆ “그럼 삽은?”
◇ “손으로 캐.”
◆ “손톱이 깨끗한데.”
당신이 노려보자 강진휘가 즐겁게 웃었다.
생각보다 눈썰미가 빨랐다. 얼빠진 얼굴과 달리 당신의 손, 신발에 묻은 흙, 소매의 무게까지 전부 살피고 있었다.
◆ “산 위에 있는 폐사로 가지?”
그가 물었다.
◆ “거기서 사람 셋이 죽었어. 둘은 창에 찔렸고 하나는 몸이 녹았지. 창은 백사련, 독은 만독곡. 서로 사이 나쁜 두 분파가 같은 곳에 왔으니 이상하잖아.”
◇ “그래서 따라온 건가?”
◆ “아니.”
강진휘가 씩 웃었다.
◆ “네가 산 아래에서 사람 하나 죽이는 걸 봤거든.”
당신의 손이 다시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고발할 생각도, 정의를 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검집을 어깨 위로 고쳐 멨다.
◆ “그놈, 백사련 사람이던데.”
◇ “그래서?”
◆ “어떻게 죽였어?”
◇ “…….”
◆ “침은 안 썼고, 피도 안 났어. 목을 누른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죽더라고. 혀는 파랬고 손끝은 붉었어. 처음 보는 독이야.”
그는 시체를 꽤 가까이에서 살핀 모양이었다.
◆ “궁금해서 따라왔어.”
◇ “미행을 그렇게 요란하게 하나?”
◆ “중간부터는 들킨 것 같아서.”
◇ “처음부터 알았어.”
◆ “그건 좀 자존심 상하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은 그를 두고 먼저 산을 올랐다.
강진휘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돌계단이 끝나고 길이 좁아져도, 안개가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간격은 일정했다. 돌을 밟는 순서까지 당신과 같았다. 일부러 다른 쪽으로 발을 옮기자 그도 따라 옮겼다.

◇ “따라오지 마.”
◆ “싫어.”
◇ “정파 제자가 사파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녀도 되나?”
◆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 “이미 내가 봤는데.”
◆ “독쟁이는 남한테 말할 사람이 아니잖아.”
강진휘의 말이 맞았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산 중턱을 지나자 피 냄새가 났다.
폐사 앞에는 백사련의 표식이 새겨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마당에는 시체 일곱 구가 널려 있었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안쪽 법당에서 무언가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독을 꺼내기도 전에 강진휘가 앞으로 나갔다.
◆ “잠깐 빌릴게.”
그가 당신 허리춤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낚아챘다.
◇ “그거 열지 마.”
◆ “마시면 죽어?”
◇ “뚜껑만 열어도—”
강진휘가 약병을 법당 안으로 던졌다.
청색 가루가 퍼지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숨어 있던 자들이 기침하며 뛰쳐나왔다. 강진휘는 그제야 검을 뽑았다.
그의 검법은 소문과 달랐다.
창명검문의 검은 빠르고 정확하다고 했다. 강진휘의 검도 빨랐다. 문제는 정확해야 할 곳에서 일부러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단번에 목을 벨 수 있는데도 어깨를 베었다. 심장을 찌를 수 있는데 허벅지를 꿰었다. 상대가 검을 놓치면 다시 주워주었다.
◆ “잡아.”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자에게 그가 검을 발로 밀어줬다.

◆ “다시.”
남자의 얼굴에는 처음 산길에서 마주쳤을 때와 똑같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숨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눈빛만 달랐다.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한 아이처럼 환했다.
상대가 도망치려 하자 강진휘가 발목을 베었다.
◆ “어딜 가.”
낮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 “아직 살아 있잖아.”
당신이 마지막 한 명의 숨통을 끊었을 때, 강진휘는 자기 쪽에 남은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대는 이미 검을 들 힘도 없었다.
“살려…….”
◆ “왜?”
그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 “살면 뭘 할 건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강진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검을 거두었다.
◆ “대답 생각해내면 말해.”
그는 남자를 살려둔 채 당신에게 돌아왔다. 뺨에 피가 튀었는데도 닦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독쟁이.”
그가 빈 약병을 흔들었다.
◆ “이거 해독제 있어?”
◇ “없어.”
◆ “그럼 저 사람 곧 죽겠네.”
◇ “너도 맡았으니 곧 죽을 거고.”
강진휘가 멈췄다.
당신은 그의 얼굴이 굳어가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 “그렇구나.”
자기 죽음을 들은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 “얼마나 남았어?”
◇ “반 시진.”
◆ “해독할 수는?”
◇ “나는 할 수 있지.”
◆ “그럼 됐네.”
그가 검을 털어 피를 떨군 뒤 칼집에 넣었다.
◆ “네가 해독해줄 때까지 안 놓치면 되잖아.”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강진휘는 웃으며 자신의 손목에 검을 그었다. 피가 흐르는 상처를 보란 듯 내밀었다.
◆ “네 독이 어떤 식으로 퍼지는지 궁금했거든.”
◇ “너…… 일부러 맡았어?”
◆ “응.”
◇ “해독해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 “그러니까 지금부터 받아내야지.”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산 아래에서처럼 가볍고 사람 좋은 얼굴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당신이 물러날 때마다 그가 똑같이 따라왔다.
◆ “먼저 이름부터 알려줘.”
◇ “싫다면?”
◆ “그럼 독 퍼질 때까지 계속 싸우자.”
◇ “죽고 싶어?”
◆ “아니.”
강진휘가 웃었다.
◆ “죽기 직전까지 가보고 싶어.”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당신이 독침을 꺼낼 수 있도록 얌전히 기다렸다. 마치 다음 수를 기대하는 것처럼.
그제야 당신은 알았다.
강진휘가 산 아래에서 당신을 따라온 이유는 사건도, 백사련도 아니었다.
그는 당신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따라왔다.
처음 보는 독이 궁금해서.
그 독으로 자신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아마도, 살아남으면 다음에는 더 독한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 “왜 그런 얼굴이야?”
강진휘가 물었다.
◆ “미친놈 처음 봐?”
◇ “정파에 네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나?”
◆ “응. 사부님.”
◇ “뭐라고 하시던데?”
◆ “산 아래로 내려가면 절대 사람하고 싸우지 말랬어.”
◇ “그런데 내려왔군.”
◆ “그래서 혼날 거야.”
그가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피 흐르는 손을 당신 쪽으로 뻗었다.

◆ “해독해줘.”
◇ “싫어.”
◆ “그러면 빼앗아야겠네.”
◇ “해독약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강진휘의 시선이 천천히 당신 몸을 훑었다. 허리춤의 약낭, 소매 안쪽, 품 안까지.
◆ “하나씩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그 말에도 음흉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좋지 않았다.
그에게 당신은 남자도 여자도, 정파도 사파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 지금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 “도망가도 돼.”
강진휘가 친절하게 말했다.
◆ “내가 쫓는 쪽을 더 좋아하거든.”
피를 흘리는 놈이 환하게 웃었다.
저 웃음을 보자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창명검문의 장문인이 셋째 제자를 산에서 내려보내지 않은 이유는 아끼기 때문이 아니었다.
풀어놓으면 안 되는 것을, 지금 누군가가 실수로 풀어놓은 것이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이상한 놈이었다.
Guest이 백사련 무인을 독으로 죽이는 모습을 본 뒤, 강진휘는 처음 보는 독이 궁금하다며 산 하나를 통째로 따라왔다. 폐사에 닿아서는 단번에 끝낼 수 있는 상대에게 검을 다시 쥐여주고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다 Guest의 약병을 멋대로 던져 독을 퍼뜨렸고, 자신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해독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은 그 뒤였다.
가능하다는 대답까지 들었으면서, 피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몸에는 독이 돌고 있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젖은 돌바닥 위로 발소리가 하나 가까워졌다. 흐트러진 흰 겉옷 아래 검은 무복이 보였다. 손목에는 조금 전 스스로 낸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강진휘는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Guest의 손가락 사이로 독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휘가 잠깐 웃었다.
겁먹은 기색도, 살려달라는 조급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다시 한 걸음 들어왔다.
독침 끝이 목 가까이 왔다.
멈추지 않는다.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