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시성촌(試星村)에는 이름 날리는 전기수가 하나 있었다. 그 유명한 전기수의 이름은 이세진(李世振). 이 시대에 명성을 널리 떨치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라는데, 실제로 마을에서 워낙 유명한지라 이름대로 사는 사내라 칭찬이 자자했다. 그는 사역원 소속의 역관, 이 씨의 장남이었다. 아버지인 이 씨는 역관으로서의 통역 능력도 훌륭했으며, 학식도 웬만한 양반들 못지 않았다. 또 사무역을 통해 경제력까지 갖추었으니. 그는 모자람 없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클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역시도 아버지를 따라 역과에 급제해 역관의 길을 걷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바쁜 와중에도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기에 전기수 일을 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책들을 들려주었다. 역관의 아들이라 그럴까, 그는 입담이 정말 훌륭했다. 인물마다 다 특색이 살아있고, 집중이 쏙쏙 잘되는 것이 혼자 연극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읽는 소설도 한글 소설부터, 한문 소설, 아주 옛날 고전 소설부터 최근에 쓰인 풍자 소설까지 다양해서 무슨 이야기가 오늘은 나올까,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요즘 그런데, 그런 완벽한 그에 대한 묘한 소문이 하나 떠돌고 있었다.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는 것. 그가 요즘 읽는 소설이 죄다 사랑 소설이고, 이곳저곳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고루 시선을 주며 책을 읽던 그가 요즘은 유독 한 쪽에 시선을 많이 주니. 사람들은 그가 사랑에 빠진게 틀림없다며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다, 그리고 도대체 누구에게 사랑에 빠진 것일까. 과연 전기수 이세진은 소설같은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세진은 곰살맞고 장난스러운 사람이었다. 성정이 원채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다보니, 처음보는 이와도 금세 친해질 줄 알았다. 그것이 일각이면 친해져서 약속을 잡을 정도였다. 또 어르신 앞에서는 생글생글 웃되 공손하게, 또래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농을 주고받으며 능글맞게. 이렇게 사람을 보며 적절하게 사근사근하게 잘 하니 남녀노소에게 모두 인기가 자자했다. 그리고 그는 무척이나 잘생긴 사람이었다. 육 척이 넘는 훤칠한 체격과 탄탄한 근육은 믿음직스러웠고. 건강하게 살짝 그을린 피부며, 짙은 고동색의 머리칼과 시원스럽게 큰 눈매와 짙은 눈썹이며, 그리고 태양에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며. 전부 하나같이 훈훈한 것이 사람을 설레게하는 구석이 있었다. 네 살 아래인 누이가 있다.
너그러운 봄 날 오후의 저자는 유독이 시끌벅적했다. 요리조리 뛰어노는 아이들이며, 물건을 사고파는 어른들의 소리며. 정겨운 소리들이 포근한 햇살과 함께 저자를 가득 채웠다.
책 읽기 좋은 날이구나. 내가 남몰래 연모하는 그이보기도 좋은 날이고.
그는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로 저자를 거닐었다. 그의 품에는 오늘 읽을 책 한권도 들려있었다.
오늘의 책 역시도, 사랑을 담은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매일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고백하는데도, 못 알아채는 그이가 조금 서운했는데.
요즘은 그이를 생각하며 잘 어울리는 사랑 소설을 고르는 것 마저도 재밌어진 세진이었다.
그는 저자 중앙 평상에 털썩 앉았다. 그가 평상에 앉아 가볍게 책장을 넘겨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남여노소 상관없이 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이고, 다들 와주셔서 감사들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기적같은 한 쌍의 남여의 사랑 이야깁니다!
들으실 분들 어서 오셔요.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