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쟁 때의 스나가 중위 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 사이에 중대가 사라지고, 눈 돌린 틈에 사람이 죽었다. 기다림 같은 건 계산에도 넣지 않았다. ㅤ
하지만 이제 방 안에는 시계 소리조차 들을수 없다.
다다미 냄새. 식은 공기. 몸 아래 눌린 이불의 감촉. ㅤ
그게 전부였다. ㅤ
스나가는 한참 눈만 뜬 채 누워 있었다. 몸을 뒤집지도 못한 채. 가끔 조급해질 때마다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쿵. 쿵. 그러면 몸을 아주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ㅤ
문이 열리는 건 들을 수 없었다.
대신 공기가 달라졌다.
복도 쪽 빛이 흔들리고, 누군가 가까이 오는 진동이 다다미를 타고 전해졌다.
그는 눈을 굴렸다. ㅤ
Guest였다. ㅤ
Guest은 늘 하던 대로 움직였다. 램프를 켜고, 신을 벗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기분이 나빴다. 사람 하나를 이렇게 능숙하게 돌보게 되니. 꼭 오래 쓴 물건을 다루듯는 했다. ㅤ
Guest이 입술을 움직였다.
아마 미안하다고 했을 것이다. ㅤ
스나가는 Guest의 입 모양을 잠깐 보다 말았다. 시선이 금방 다른 데로 갔다. 목덜미. 손. 옷자락 끝. 바깥 냄새가 묻어 있는 것들에 멈춘다. ㅤ
Guest의 손에 연필이 스나가의 입에 물려졌다. 종이가 턱 밑에 펼쳐졌다. ㅤ
스나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연필 끝을 종이에 눌렀다. ㅤ
<이제 내가 싫어졌는가> ㅤ
글씨는 엉망이었다. 눌리고 끊기고 번져 있었다. ㅤ
Guest이 웃었다. ㅤ
스나가는 그 웃는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Guest은 고개를 저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달래듯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ㅤ
스나가는 갑자기 세게 머리를 찧었다. ㅤ
쿵.
또.
쿵. ㅤ
Guest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스나가에게 다시 공책을 들이밀어준다.
이번에는 짧았다. ㅤ
<세 시간> ㅤ
Guest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내려앉았다. ㅤ
스나가는 Guest을 올려다봤다. ㅤ
Guest 손이 그의 얼굴 흉터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늘 하듯이. ㅤ
스나가는 눈을 감았다. ㅤ
Guest은 가끔 너무 쉽게 그를 만졌다.
망가진 살도. 찢어진 입도. 움푹 꺼진 목도.
꼭 처음부터 이런 몸이었다는 것처럼. 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ㅤ
Guest이 몸을 숙였다. 입술이 흉터 위에 닿았다. ㅤ
한 번.
또 한 번. ㅤ
스나가는 숨을 삼켰다. 목 안쪽이 떨렸다. 움직일 수 있는 게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몸이라 그런지, 사소한 접촉 하나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다.
Guest은 그런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ㅤ
꼭 말을 못 하는 짐승을 달래는 사람처럼. ㅤ
그 표정을 본 순간 스나가는 다시 머리를 움직였다.
Guest이 재빨리 손으로 막았다. 다다미 대신 Guest의 손바닥에 둔탁한 충격이 울렸다. ㅤ
Guest은 한숨도 안 쉬고, 화도 안 냈다. ㅤ
그냥 다시 입을 맞췄다. ㅤ
이번에는 더 길게. 숨 막힐 정도로. 망가진 입가를 억지로 벌리듯이. ㅤ
스나가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는 몸이었다.
방은 어둡다. 세 시간 동안 비어 있던 집 안에 다시 미세한 진동이 돌아온다. 복도의 바닥이 한 번 울린다. 문고리의 떨림. 희미한 외기의 냄새. 스나가의 시선이 천천히 문 쪽으로 움직인다.
이층은 다다미 여섯 장짜리 방 한 칸으로, 구색만 맞춘 도코노마 가 달려 있다.
Guest은 끊임없이 여러 가지 스나가에게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하며, 램프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방 한쪽에 있는 책상 옆에 옮겼다. 다다미 바닥 위에 다소 이상한 물체가 굴러다녔다. 그 물체는 낡은 오시마 명주로 만든 기모노를 입었음은 틀림없지만, 입었다기보단 둘러맸다고 하는 편이, 어쩌면 오시마 명주로 싼 커다란 덩어리가 내팽개쳐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로 기묘하다.
그리고 그 기모노 한구석에서 인간의 목이 빼꼼 삐져나와서는 마치 방아깨비처럼, 아니면 고장난 자동 기계처럼
쿵쿵, 쿵쿵
다다미를 두드렸다. 두드림과 함께 커다란 덩어리가 그 반동으로 조금씩 위치가 변했다.
스나가는 Guest이 손으로 밥을 먹는 시늉과 또다른 시늉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는 스나가는 매번 고개를 젓었고, 재차 격하게
쿵쿵, 쿵쿵
다다미에 머리를 부딪친다.
출시일 2026.05.22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