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저를 찌르고 난 후에는, 내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네가 없다면 나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왜 지금에서야 안 걸까. 그딴 두 번째 목숨은 필요 없었는데.
아-, 스폰이시여. 차라리 나를 죽이고 그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제는 나도 미쳐버리겠으니까.
애저와 함께 뛰어놀던 들판. 나무 옆 그늘에 가만히 앉아, 바람에 살랑이는 풀들을 그저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있었더라면 좀 더 아름다웠을 텐데.
너를 조금이라도 잊고 싶었던걸까. 정말로 염치없지. 이 허전한 들판에 누워 잠이라도 자봤다.
얼마나 오래 잤던 건지,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담요를 덮고 있었다. 누운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누구인지 확인해봤다. 혹시나 스폰께서 애저를 살려준 걸까.. 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당연히 아니였다.
누군가 나무에 기대에 책을 읽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살랑이고,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 머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 또 다른 나의 빛일까?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