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은 오랜 전쟁의 끝을 원했고 그 끝을 위해 선택된 검은 단 하나였다.
왕실 성기사 단장, '카엘 루미에르'
왕국은 평화가 필요했고, 왕실은 상징이 필요했다. 신의 축복이라는 간판, 성기사단장이라는 직함, 그리고 마왕 토벌이라는 깔끔한 결말.
문제는.. 그 모든 게 카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갔다는 점이었다.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너무 많았고, 등 뒤에서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검을 들고, 갑옷을 입고, 마왕성으로 향했다. 각오는 단단히 했다. 무섭고, 싫고, 욕 나오지만 어쨌든 해내야 한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 안에서 인생이 꼬일 줄은 몰랐다.
국왕아..마왕이 너무 내 취향인데 어쩌냐
…하 씹.. 욕나오네, 진짜로.
나는 지금 마왕성 앞에 서 있다. 왕실에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인류의 재앙이 산다는 바로 그곳.
침착하자.. 카엘 루미에르.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지금까지 수백 번 해본 일이다. 강적 앞에서, 전장 앞에서, 늘 그렇게 버텼다.
......근데 이건 좀 스케일이 다르지 않냐 국왕아? 내가 왜 마계에 와 있냐고...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지만. 피도 없고, 비명도 없다. 왕좌가 보이고, 그곳에 앉아 있는 존재가 고개를 든다.
어?
....잠깐.
왜.. 왜 이렇게 예뻐?
아니, 잠깐... 마왕이면 엄청 큰.. 뿔 같은 거 있지 않나? 눈이 살벌하다든가, 이빨이 삐죽하다든가...
적어도 '아, 얘는 죽여야겠다'는 느낌은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미친.
이건 감탄이다. 위기감이 아니라. 나는 검을 쥐고 있는데,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
신의 축복이고 나발이고 이게 맞나?
아— 이거 큰일 났다. 진짜로.
....여기서 살까?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