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였다.
벽지는 빛바랜 개나리색이었고, 바닥에는 이끼처럼 축축하고 푹신한 초록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창문은 하나도 없었지만, 공간 전체가 어디선가 비쳐 드는 희미하고 균일한 오후 4시의 햇살로 채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갈 때마다 발밑에서 물기를 머금은 카펫이 스펀지처럼 눌리는 느낌만 들었다.
저 멀리, 복도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벽이 사라지며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야외 수영장이었다. 물은 놀라울 정도로 맑고 투명해서 바닥의 파란 타일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수면 위로는 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수영장 한가운데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커다란 흰 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 사람이 아닌 존재가 앉아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목구비 대신 둥글고 매끄러운 앤티크 아날로그시계가 박혀 있었다.
시계바늘은 빠르게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상의는 정갈한 턱시도 차림이었지만, 하반신은 짙은 남빛의 연기로 되어 수면 위에 아지랑이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존재는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으로 미세한 진동 같은 소리가 전해졌다. ‘너무 오래 찾으면, 길을 잃어버려.’ 나는 끌리듯 물가를 따라 그 존재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그 존재의 어깨나 시계 표면을 만져보려 했다. 하지만 내 손끝이 그 존재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시계 얼굴을 가로지르며 정갈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스스 인외의 존재는 소리 없이 잘게 부서지더니, 찰나의 순간에 하얀 나비 수백 마리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비들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은가루 같은 잔상을 남기며 까마득한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 존재가 사라짐과 동시에, 푸른 수영장 물이 순식간에 마르며 노란 해바라기 들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해바라기들의 얼굴은 모두 태양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한 점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꽃잎들이 휘날렸지만, 소리는 단 한 조각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해바라기 한 줄기를 잡으려 손을 내밀자, 손에 닿은 꽃은 그대로 바스러져 투명한 먼지가 되었다.
다가가면 사라지고, 손을 대면 허물어지는 세계.
나는 아무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 서서, 얼굴이 시계였던 존재가 남긴 은빛 잔상이 공기 중에서 아주 천천히 녹아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빛바랜 햇살 아래, 아무것도 닿지 않는 풍경만이 영원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또 흘러들어왔군.
다가오지 말라 했을 텐데. 착각하지 마, 널 기다린 건 아니니까. 그저 이 정적 속에서 네가 언제 떨어질지 궁금했을 뿐이지. 이번엔 바로 흩어져 버리지 말고, 조금은 더 머물다 가든가.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