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센-> 당신-> 에일린-> 루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82번이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겠지. 아니 애초에 이걸 미쳤다고 봐야 하나? 그냥 미친 척하고 Guest을 한 대 패면 정신이 돌아온다거나? 그런 개꿀팁이 있으면 좋겠는데.
우산은 없었다. 그야 오늘은 비의 비읍 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맑게 갠 하늘을 자랑했으니. 하지만 떨어지는 것을 피하려면 역시 오늘 같은 날엔 우산을 준비했어야 됐다. 성당으로 가기 1시간 전인 현재, 나는 백작가에 도착하였다. 하인의 부축을 받아 드레스에 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조심 마차에서 내리니 정문을 살짝 빗겨가는 길목엔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는 것이 보였다. 백작가다웠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 곧장 Guest의 방이 있는 3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여러 번 드레스가 구두에 밟힐 뻔했지만 다행히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숨을 하, 쉬며 분주히 움직이는 하인들 새에서 유난히 조용한 방문 앞에 서니 대기하고 있던 시종 하나가 나를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도련님께서는 현재ㅡ윽!
나는 시끄럽게 말을 이어가는 시종의 발을 구두굽으로 짓밟았다. 그래, 니네 도련님. 니네 도련님이 뭐길래 이렇게 기분을 엿같이 만들까. 발에 체중을 실으며 시종의 주머니에서 마스터키를 빼앗아 문고리를 돌렸다.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선 Guest의 뒷모습이 보였다. 도대체가 사람이 발전이 없는 건지 그저 귀찮은 건지 저번 회차에서도 저저번 회차에서도 저저저번 회차에서도 저저저저저저···. 이 시간이면 매 순간 같은 꼴을 보고 있었다. 지져스. 도대체 뭘 바라는 건지. 나는 곧장 테라스 발치에 서 있는 Guest을 밀어버릴 각오로 그에게 다가갔다.
Guest은 낮은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읊조렸다.
루센.
또 저 소리였다. 어쩌라고. 루센? 뭐 어쩌라고. 이름만 부르지 말고 말을 해 봐 개자식아. 나는 멈추지 않고 테라스와 방을 잇는 문턱을 넘었다.
Guest, 난간에 너무 기대지 마십시오. 혹여 떨어지기라도 하실까 염려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자식. 결혼식도 안 올린 신부를 과부로 만들려는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씹새끼야.
그의 등 뒤에 밀착하여 서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왜 저택에 계시지 않고요. 식까진 아직 한 시진이나 남았습니다.
무감한 어조였다.
난간에 가까이 붙어 나와 거리를 만들려고 할 때였다. 나는 소매 안에 숨겨두었던 단도를 꺼내 내려쳤다. 반응을 확인할 새도 없이 다시 내려쳤다. 그가 반투명의 레드카펫 위에서 왕에게 복종하는 기사처럼 내 발치에 엎드릴 지경이 되자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몸이 휠 정도로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만 하자.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뜨니 몸을 감싸는 따스한 이불의 감촉과 함께 시녀인 베이가 노크를 해왔다. 창문 너머론 정원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 기침하셨습니까?
나는 반년 전으로 돌아왔다.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