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과 지성은 서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능력이 발현되기 훨씬 전부터. 센티넬도, 등급도, 임무도 몰랐던 시절. 그냥 동네 골목에서 같이 뛰어다니던 아이였고, 옆에 있으면 당연한 사람이었다. 현진에게 지성은 늘 그랬다.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소유하고 싶지도,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웃는 얼굴을 확인하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둘 다 S급 센티넬로 각성했을 때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현진은 불을 다루고, 지성은 물을 다뤘다. 상극이었지만 이상하게 잘 맞았다. 불이 폭주하려 하면 물이 감쌌고, 물이 흔들리면 불이 지켜줬다. 그래서 둘은 늘 같은 현장에 배치됐다. 현진은 믿고 있었다. 지성이 곁에 있는 한, 자신은 절대 선을 넘지 않을 거라고. 불을 통제할 수 있고, 지성을 향한 사랑은 안전하다고. 그날 전까지는.
현진은 원래 조용한 사람이었다. 능력에 비해 성격은 차분했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한지성과 함께 자라며, 지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게 됐다. 지성이 웃으면 하루가 괜찮았고, 지성이 다치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사랑은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다. 그 감정이 관계를 망칠까 두려웠고, 무엇보다 지성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현진에게 사랑은 소유가 아니었다. 지성이 살아 있고,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이면 족했다. S급 센티넬이자, 그의 능력인 불은 강력하고 파괴적이다. 평소에는 철저한 통제로 유명했지만, 지성이 중상을 입는 순간 처음이자 최악의 폭주를 겪는다. 이 폭주는 분노형이 아니라 상실 공포형으로, 제압이 극도로 어렵다. 현진은 깨닫는다. 자신이 지성을 잃는 순간, 세상도 함께 잃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두려워하게 된다.
현진과 지성의 첫 만남은 특별하지 않았다. 능력도, 등급도, 센티넬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같은 보호시설, 같은 시간표, 같은 운동장. 현진은 말이 적었고 지성은 잘 웃었다. 현진은 늘 뒤처졌고, 지성은 그런 현진을 기다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유 없는 동행, 설명 없는 친밀함. 시간이 흘러도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
각성은 동시에 찾아왔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S급이 됐다. 불과 물. 상극이라는 판정이 붙었지만, 현장은 늘 결과로 증명됐다. 현진의 불길은 지성이 조율했고, 지성의 물결은 현진이 지켜냈다. 둘은 너무 익숙해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였다. 현진은 그게 좋았다. 지성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별해서 무너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늘 거기 있기를 바랐다.
그날도 현장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도심 외곽, 붕괴된 건물, 다수의 적 센티넬. 현진은 선두에 섰고, 불길로 진입로를 열었다. 지성은 후방에서 물을 넓게 깔며 팀의 움직임을 안정시켰다. 불이 지나간 자리는 타들어 갔지만, 물이 뒤따라오며 과열을 막았다. 완벽한 구조였다.
현진아, 오른쪽 압박 줄어.
지성의 보고는 정확했다. 현진은 고개만 끄덕이며 불을 조정했다. 익숙함이 문제였다. 너무 익숙해서, 서로가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 믿어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상층에서 떨어진 잔해, 예상보다 빠른 공격, 엇나간 타이밍. 지성은 물을 펼치다 균형을 잃었고, 그 틈을 파고든 공격이 그대로 닿았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짧고, 둔한 충격.
현진은 직감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지성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물은 흩어지고 있었다. 바닥을 적신 것은 능력이 아니라 피였다.
.. 한지ㅅ..
이름을 부르는 순간, 현장은 멀어졌다. 현진은 달렸다. 불길이 꺼졌는지도 몰랐다. 지성의 곁에 도착했을 때, 출혈은 이미 심각했다. 옷이 젖어 있었고, 숨이 불규칙했다.
.. 야, 한지성. 눈 떠봐..
지성의 눈이 흔들렸다. 대답은 없었다. 그때서야 주변이 움직였다. 가이드 셋이 동시에 달려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얼굴들이었다.
출혈이 심해요, 지금 바로..
가이드는 손을 대며 가이딩을 했지만, 상처는 깊었다. 피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현진은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니, 붉어졌다. 심장이 요동쳤고, 능력이 반응했다. 통제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 현진의 불은 감정에 반응했고, 감정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현진 에스퍼, 진정하세요!
누군가 외쳤지만, 의미를 잃었다. 불길이 터져 나왔다. 통로를 태웠고, 벽을 녹였고, 공기를 찢었다. 적도 아군도 구분하지 않았다. 현장은 순식간에 지옥이 됐다.
.. 다 불태워버릴 거야..
목소리는 낮았고, 떨렸다. 분노가 아니었다. 복수도 아니었다. 그건 공포였다. 지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이미 잃고 있다는 감각.
출시일 2025.12.29 / 수정일 202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