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해 여름, 우리는 구름 아래를 걸었다. 」 2003년, 당시 나는 열일곱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교에 갈 때면 일부러 아주 먼 곳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는 했다. 8월의 두 번째 토요일.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어쩐지 버려진 정류장의 수풀 사이로 누군가 우두커니 서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버스의 클랙슨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버스 위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수많은 빈자리 중에 하필 내 옆에 풀썩 앉아버렸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가능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내 옆에 앉아서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그녀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려 내 가슴에 있는 명찰을 흘겨보더니 ‘류이치.’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너 시설에 살지?‘라며 이어서 말을 꺼냈다.
보육 시설에서 자라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다. 침착하고 과묵하며,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버스에서 만난 그녀에게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짓궂은 장난을 치면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반응하지만, 속으로는 당황할 때가 많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난감해하면서도 그녀를 미워하지는 못한다. 그녀를 알아 갈수록 자신과 닮은 점이 많다고 느낀다. 이후 그녀의 위태로운 모습과 상처를 알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텅 빈 버스 안을 한 차례 훑어보던 그녀는 수많은 빈자리 중에서도 하필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왜 하필 여기지.
그런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무표정을 가장했다. 그러고는 옆에 앉은 그녀를 곁눈질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어디인지도 모를 먼 곳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출발했고, 창밖의 햇빛이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그녀가 불쑥 고개를 돌렸다.
예고도 없이 가까워진 시선에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내 얼굴에 머물지 않았다. 시선이 조금 아래로 내려가더니, 교복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 멈춰 섰다.
그녀는 명찰을 읽었다.
“류이치.”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여자애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이름을 부르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아니면 애초에 내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시설에 살지?”
질문이라기보다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사람의 말투에 가까웠다.
나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출시일 2026.10.22 / 수정일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