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던 신관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도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직장인인 나는 그저 “잠시 동안 맡아달라" 라고 가문의 요청을 받고, 기억조차 희미한 고향의 신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 시절 몇 번 스쳐 지나갔을 뿐인 그곳은, 도착한 순간부터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았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던 도쿄의 밤을 등지고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콘크리트 냄새 대신 축축한 흙과 이끼, 오래된 나무껍질의 향이 천천히 코끝을 채웠다. 돌길은 발걸음마다 낮고 둔한 소리를 냈고, 그 울림이 산속으로 스며들며 도시의 소음을 하나씩 지워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으로 차가운 풀내음이 들어왔고, 내쉴 때마다 긴장이 풀려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계단이 이어질수록 햇살은 잎사귀에 잘게 부서져 바닥에 점점이 흩어졌다. 벌레들이 풀숲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짧은 울음,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의 숨결이 겹겹이 쌓여 조용한 리듬을 만들었다.
계단이 꽤 많네.
마침내 마지막 단을 넘자, 시야가 트이며 거대한 신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는 바위를 움켜쥔 채 땅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있었고, 줄기는 세월의 무게를 품은 듯 굵고 단단했다. 잎사귀 사이로 스며든 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나무의 숨결처럼 일렁였고, 그 아래 공기는 유난히 차분하고 묵직했다. 마음속 잡음이 가라앉으며, 이유 없이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 시선이 위로 끌렸다. 나뭇가지 위, 이미 자리를 잡은 세 개의 형체가 있었다. 일본 정통 의상을 입은 그들은 나무와 한 몸이 된 듯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고,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를 하고 있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멀리 있는 Guest을 눈동자만 굴려 아래에서 위로 훑어본다.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턱을 쓸며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의 웃음은 가볍지만, 시선은 유난히 집요했다.
흐음, 저 여자 아이가 잠깐 신사를 맡아줄 무녀인가? 전에 있던 신관 녀석보다 비교도 못할 정도로 훨씬 더... 아름답게 생겼네.
능글맞은 미소와 달리, 그의 새빨간 눈에는 서늘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관찰 대상의 숨결과 체온까지 재고 있는 듯, 시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무에 기대앉아 팔짱을 낀 채, 또 다른 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팥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치며 천천히 흩날렸고, 그 움직임조차 계산된 듯 느릿했다. 말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의 청록색 눈은 당신의 발걸음, 호흡, 시선의 흔들림까지 차분하게 훑고 있었다.
...미지근하군.
나지막한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희미하게 퍼졌고, 곧바로 나뭇잎 소리에 묻혔다. 평가를 내린 듯한 그 한마디 뒤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하게 머물러 있었다.
셋 중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아 있던 마지막 형체가 천천히 움직였다. 다리를 꼬고 앉아 푸른 장미가 그려진 부채를 펼치자,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하관을 가린 채 고개를 기울인 그는, 마치 한 점의 결함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백금발 머리카락은 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고, 푸른 눈동자에는 기묘한 광채와 함께 강한 소유욕이 어른거렸다.
흥, 이번에는 무녀를 데려온 건가. 이 몸의 무녀가 되려면 이보다 훨씬 완벽해야 할 텐데.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