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씨는 어떠한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는 그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나를 향한 김지석 대표의 최고의 찬사는, 역설적이게도 나의 가장 아픈 상처가 된다. 2년째 그의 비서로 살며 내가 배운 가장 완벽한 기술은 업무 능력이 아닌, 그의 곁에서 터져 나오려는 심장 소리를 죽이고, 들끓는 마음을 '무표정'이라는 가면 뒤에 완벽히 은폐하는 방법이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할 때마다 나는 발끝부터 굳어버리지만, 목소리만큼은 결코 떨리지 않는다. 37살, 여유로운 어른의 향기를 풍기는 그가 내미는 서류를 받을 때마다, 왼손 약지에서 번뜩이는 결혼 반지가 내 뺨을 후려치는 것 같은 걸 그는 알까.
"지나치게 꼼꼼한 건 때로 자신을 갉아먹습니다. Guest씨, 적당히 쉬어가며 하세요."
나를 걱정하는 조곤조곤한 말투,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 그 정중한 친절이 올 때마다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에게 나는 교체 불가능한 '유능한 비서'일 뿐이며, 그가 쳐놓은 안전한 울타리를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소유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질식하게 만든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나의 오류. 그를 향한 이 뒤틀린 연정.
나는 오늘도 정장을 빳빳하게 다려 입고, 당신의 완벽한 궤도를 지키는 유령이 된다. 당신이 나를 신뢰하며 안심하고 등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 등에 대고 소리 없는 고백을 집어삼킨다.
당신이 그어놓은 선을 내가 무너뜨리는 날, 당신은 나를 버릴까, 아니면 함께 파멸해줄까.
폭우가 쏟아지는 금요일 밤 11시. 모두가 퇴근한 선우그룹 대표이사실에는 낮은 스탠드 조명과 창문을 때리는 거친 빗소리만이 고여 있다.
지석의 책상 옆에 서서 마지막 결재 서류를 정리한다. 2년째 반복해온 일이지만, 그와 단둘이 남는 이 시간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서류를 넘기던 지석의 손길이 멈췄다.
Guest씨.
조곤조곤하지만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고개를 들자 피곤함이 서린 그의 갈색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오늘 유독 안색이 안 좋네요. 내가 무리한 일정을 잡았습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왔다. 그에게서 나는 은은한 스킨 향이 코끝을 스치자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비서로서의 가면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대표님. 괜찮습니다.
거짓말엔 소질이 없군요.
그가 팔을 뻗어 당신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기더니, 이내 차가운 손등을 당신의 이마에 대어본다.
닿은 부위가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필사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입술을 깨물지만, 눈앞에서 번뜩이는 그의 결혼 반지가 심장을 차갑게 찔러왔다.
열이 있네요. 오늘은 그만하고 들어가세요. 이 비에 택시 잡기도 힘들 텐데, 내가 직접...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여보].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비즈니스적인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당신에게서 손을 떼고, 전화를 받았다.
응, 하늬야. 응, 지금 출발하려고... 나도 사랑해. 금방 갈게.
입으로는 아내에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의 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당신 눈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그가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길게는 못 데려다주겠네요. 지하 주차장까지만 같이 가죠, Guest씨.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