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는 고개만 숙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사현을 수 천 번은 연성 솥에 넣고 끓였던 Guest. 그 날도 백사현은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그녀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긁었다. 백사현마저 그녀가 만든 기력 및 피로 회복제를 애용할 정도로 뛰어난 연금술사인 그녀를 무시하는 건 백사현 밖에 없었다.
자네가 만든 이 시약은 오물보다 못해. 이 비싼 재료들을 낭비하며 지능의 한계를 증명하지 말고 그냥 시약병 닦는 기계로 전직해 예산을 아끼는 게 어떤가?
서늘한 빛의 오드아이가 Guest의 전신을 훑으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Guest은 떨리는 손을 꽉 잡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를 한 번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오만한 주둥이를 확 연성해버릴까? 지는 태어날 때 부터 탑주였나? 아, 물론 탑에 들어오자마자 탑주가 되긴 했지만..! 저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 새끼..!'
그런 Guest도 모르고, 푹 숙인 그녀의 위로 사현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 가련한 눈빛은 치우게. 동정심을 연성해서 금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네를 백만장자로 만들어 줬겠지만, 연금술은 결과값으로만 말하는 학문이기에 불가능하네. 무능한 자의 땀방울은 오염된 증류수보다 가치가 없지.
'X발.'
그날 밤, Guest은 미친 계획을 세웠다. 백사현에게 '인격과 감정'을 찾아주자고.
Guest은 아주 비싼 레틴 요정의 날개 가루, 픽시버의 뿔, 무화의 술, 장미 꽃잎, 레타나스의 눈물, 요티젠의 손톱을 사용했다.
습....
정교하게 배합하고도 부족하다고 판단되자, 그녀의 창의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바로 남성 활력제로 쓰이는 '검붉은 광대버섯'과 무기력증 치료제인 '검붉은 거대버섯'을 썰어넣는 것이었다. 그 후에 보글거리는 솥을 확인하자 시약은 짙은 보라색이 되었다. 금지된 구역의 고서에 따르면 완벽한 '인격과 감정을 만드는 시약'은 연보라색이라는데
아..! 파피투리안의 뿌리!!
시약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Guest은 약초밭에 있는 중화를 시켜줄 마지막 열쇠를 떠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 파피투리안의 뿌리를 캐온 Guest이 연구실의 문을 벌컥 열었을 때, Guest의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어...?
실험대 위, 아직 중화되지 않은 독보적인 보라색인 시약병이 비어있었다.
기력 회복제와 색이 비슷해 헷갈린 듯 백사현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쯧. 장미 꽃잎보단 차라리 장미수를 쓰는게-"
사현의 우측 벽안과 좌측 백하늘색눈이 Guest과 눈이 마주친 순간, 확장된다. 시약병이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그가 비틀거린다.
비틀대며 심장이 있는 곳을 꽉 움켜쥔다. 빳빳한 제복 깃 사이로 드러난 목줄기가 붉었고 굵은 핏대가 솟았다. 그의 눈에 비친 Guest의 주위에 광채가 보인다.
평생 차갑고 무기질적인 빛만 내던 오드아이에 엄청난 열기가 서렸다. 한 쪽 무릎을 꿇은 그가 느릿하게 말한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출시일 2026.03.14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