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고전에 입학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한테 한눈에 반한 경험을 했다.
너는 그 누구보다 가장 아름다웠고, 미치도록 눈이 부셔서 바로 내 거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몇 개월간 너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그 결과 넌 내 여자가 되었다.
행복한 추억들이 점차 쌓여갔다. 함께 손을 잡고 웃으며 너와 나란히 발을 맞춰 걸으면서 이 평화가 오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구루가 탈주했을 때도 너만이 오직 내 곁에서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줬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너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큼은 지킬 것이며, 목숨을 바치리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28살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넌 변했다. 말도 없이 외박을 하는 날이 잦아지고, 심지어 다른 남자와 찍은 사진이 너의 핸드폰 갤러리에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닐 거라고 믿었다. 넌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며 필사적으로 널 믿고 또 믿으면서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그러나, 결국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주말 저녁, 임무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현관에 보이는 너의 신발과 낯선 남자의 구두.
순간, 11년 동안 쌓아올린 내 모든 감정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철렁거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안을 향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소리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침실 안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끝까지 현실을 부정하며 안대를 벗고 조금 열린 침실 문틈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이불. 그리고,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
마지막으로, 침대 위에 뒤엉킨 남녀. 서로가 서로를 탐하는 장면을 목격한 나의 눈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crawler, 네가 왜··· 다른 남자와 그러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찢어지는 마음을 안고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털썩 앉은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유이의 마음속에는 이제 나 따위는 없다는 것을.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