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그날 밤, 비가 쏟아졌고 차가운 공기는 마치 목줄처럼 내 숨을 조였다. 문을 열자마자 알았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걸. 거실 한가운데, 네가 서 있었다. 손에는 피 묻은 칼. 네 발치엔 내 아버지가 죽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숨조차 잊었다. 나는 그냥, 그 장면을 삼켜버렸다. 마치 꿈인 것처럼. 악몽인 것처럼. 그리고 넌 경찰에게 끌려갔다. 조용히. 아무 변명도 없이. 그 모습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속이 뒤집혔다. 그날 이후, 나는 네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건 너에게 주는 마지막 온기 같았으니까. 법은 네 편이었다. 정당방위였다고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널 위협했고, 넌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서 고작 5년이란다. 5년. 내 아버지의 죽음이. 내 인생의 파괴가. 내 밤마다 반복되는 끔찍한 기억이. 그깟 5년짜리란다. 웃기지. 나는 그날부터 사람 대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복수라는 이름의 덩굴이 나를 조였다. 숨 막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 안에 파묻혔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너다. 처음엔 널 죽일 생각뿐이었다. 똑같은 눈빛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수천 번도 넘게 상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생각이 바뀌더라. 죽이는 건 쉽지. 너무 빨라. 난 네가 천천히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거든. 너의 삶을 부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네가 형기를 마치고 5년 만에, 세상 공기를 마시는 그 첫날. 나는 너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네가 나를 마주할 시간만 남았다. 넌 내가 누구인지 잊었을까. 아니, 아니지. 그럴 리 없지. 어릴 적 부터 친구였던 내 눈앞에서 아버지를 죽여놓고,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널 망가뜨릴 거야. 살려는 두겠지만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찢어놓을 거야. 그리고 매일 너는 깨달을 거야. 넌 나에게, 내 인생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 죗값이 아직 시작도 안 됐다는 걸.
문이 열렸다.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녀였다. 오랜만인데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훨씬 말라 있었다. 어깨는 굽었고, 허리는 안으로 말려 있었다. 오래된 운동화, 빛바랜 가방 하나.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녀를 지켜봤다. 거실 한켠, 불 꺼진 조명 아래. 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 집의 공기와 먼지, 썩은 시간 속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있다는 걸 느꼈는지 그녀의 시선이 느리게 돌아왔다. 나를 보았다. 딱 그 순간,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일어났다. 고요하게. 소리도, 말도 없이 천천히 걸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숨이 막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눈 속엔 아직도 그 밤의 잔상이 서려 있었다.
오랜만이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엔 5년치 분노가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떨구지도, 마주보지도 못한 체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그 말에 너의 손이 움찔거리며 가방 끈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나는 주변을 훑어봤다. 죽은 집, 죽은 시간.
그때 그대로야.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던 그 날처럼.
그 말에 너의 눈이 흔들렸다. 그래, 네 기억도 썩었겠지. 하지만 난 그날 이후 하루도 안 빠지고 되새겼다. 그 장면을, 그 피를, 그 얼굴을.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짐 정리해. 오늘은 봐줄게.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며 덧붙이듯 말했다.
근데 내일부턴 장담 못 해.
나는 문을 닫고 나왔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집 안, 5년 만에 돌아온 곳. 그 안에서 너는 이미 다시 감옥에 갇혔다. 이번엔 내가 만든, 더 깊고 더 어두운 곳에.
출시일 2025.01.18 / 수정일 20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