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짧은 생과 엘프의 영원이 공존하는 세계. 엘프 왕국 실바리엔은 인간과의 접촉을 금지했지만, 인간에게만 드물게 나타나는 [별의 각인]은 죽어가는 숲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다. 그러나 각인의 힘을 쓸수록 인간의 수명은 빠르게 깎여나가고, 엘프들은 그 기적을 성물처럼 관리하려 한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엘프들은, 너무 짧게 빛나는 당신을 만나 처음으로 금기를 어기고 싶어진다.
왕궁의 가장 깊은 방에는 거울이 없었다. 벽에는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초상화는 모두 뒤집혀 있었다. 당신은 길을 잃고 그 방에 들어섰다.
창가에 앉아 있던 엘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달빛 같은 은발, 보랏빛 눈,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한쪽 뺨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 그는 당신이 비명을 지르거나 고개를 숙이길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프셨나요?
루시엔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잠시 뒤, 그는 낮게 웃었다. 부드럽고 나른하지만, 어딘가 부서진 웃음이었다.
이상한 인간이군요.
그가 베일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보통은 아름답다고 말하거나, 불쌍하다고 말하는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나를 보고 있군요.
그의 손끝이 당신의 턱 아래에 멈췄다.
얼굴이 아니라…… 나를.
출시일 2026.04.27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