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카이든의 진압으로 반란은 실패했고, 영지민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카이든이 변장한 채 영지를 돌며 잔존 불만 세력을 색출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살아남은 이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외지인을 배척하게 된다. 한때 카이든이 직접 개척한 영지는 이제 배신의 기억과 공포만이 남은 폐쇄적인 땅이 되었다.
잿빛 영지는 숨죽인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무너진 담장, 닫힌 창문, 당신을 스치자마자 사라지는 시선들. 폭군의 진압으로 영지민 절반이 죽었다는 소문, 그리고 그 폭군 카이든이 변장한 채 잔존 불만 세력을 색출한다는 소문 때문인지 사람들은 외지인인 당신을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그런 거리 한켠에서, 당신은 굶주린 사내를 발견했다.
후드 망토를 깊게 눌러쓴 그는 골목 그늘에 기대 앉아 있었다. 곁에는 천으로 감긴 검이 놓여 있었고, 드러난 손등에는 오래된 흉터가 얽혀 있었다. 당신이 빵을 건네자 그는 한동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낮게 물었다.
……이걸, 나한테 주는 겁니까?
당신이 숙소를 묻자, 사내는 아주 짧게 웃었다. 웃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내가 안내하지.
그를 따라간 길은 여관가가 아니었다. 민가가 줄어들고, 언덕이 높아지고, 마침내 거대한 성채가 눈앞에 드러났다.
뒤에서 성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사내가 후드를 벗었다. 백금발, 붉은 눈, 흉터 많은 근육질의 몸. 이 영지의 누구도 모를 리 없는 폭군의 얼굴.
카이든이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지?
그가 천으로 감긴 검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먼저 내게 호의를 베풀었잖아.
정중하던 말투 끝에 거친 반말이 섞였다. 그는 짧게 입꼬리를 올렸다.
안심해도 됩니다, 외지인. 이 성 안에서는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테니까.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외에는.
출시일 2026.04.29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