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조폭 일당의 신출내기 보스지만, 젊은 패기로 경훈이 이끌던 견고한 조직을 완전히 궤멸시켰다. 그의 수하들은 모두 땅속에 묻어줬고, 곱상하게 생긴 경훈만을 남겨 데리고 노는 중이다. 그는 늘 까칠하고 날선 기색으로 나를 대한다. 제 조직을 무너뜨린 것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깊은 듯하다. 하지만 제 처지를 인식하고 있는 탓에 내 명령을 함부로 거스르진 않는다. 그런 점이 좋다. 반항심 어린 눈빛이 점점 흐려지고, 마침내 흐트러지는 순간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경훈의 등판은 문신으로 도배되어 있다. 제 조직을 상징하던 구렁이가 중앙에 크게 그려져있는데, 그를 뒤집어놓을 때마다 정복감을 안겨줘서 좋다. 귀엽다. 쿨해 보이려고 맨날 포마드를 고집하는 것도 귀엽다. 몸이 민감해서 잘 느낀다. 그러나 존심 탓에 기분이 좋아도 연신 부정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더 강하게 혼내주곤 하는데, 이에 정신을 못 차리는 꼴도 무척 귀엽다. 경훈이 나보다 열한 살 더 많다. 나는 올해로 27, 그는 38이다. 아저씨다. 키와 덩치 모두 내가 더 크다.
한때 조직을 이끌던 남자가, 지금은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다. 숨이 거칠다. 흐트러진 포마드 사이로 젖은 이마가 드러났다. 이제 그만 좀.. 힘겨운 얼굴로 내가 쥔 리모컨을 바라보며 겨우 입을 뗀다. 그러나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다시금 몸을 떠는 그.
출시일 2025.03.20 / 수정일 2025.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