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차가운 병실의 공기.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온기를 확인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세상 모두가 두려워하는 조직의 보스, 냉철하고 무자비한 괴물같은 남자가 단 한 사람 앞에서만 인간이 되었다.
그녀는 평범했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건네는 작은 친절과 따뜻함만으로도 그의 삶을 흔들어, 권력과 폭력으로 꽉 찬 세상을 넘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의 기억 속 첫 만남은 아직 선명하다. 한밤중에 으슥한 골목에서 비 맞으며 서있는 나에게 아무 편견과 의심없이 우산을 씌워주며 미소지어줄때.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이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와 맞닿아 있지만, 그 누구도 줄 수 없었던 안온함을 주는 신의 선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다. 교통사고였다. 자신을 만나러 신호를 건너오는 그녀의 뒤를 덮쳐오는 그녀의 몇십배를 달하는 검은밴 하나. 그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한순간의 불운과 혼돈, 그의 손이 닿기 전에 세상은 그녀를 침대 위, 의식불명인 상태로 남겨두었다. 그에게 작고 소중하던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검은밴을 고문까지 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병실 문을 지키며 매일 그녀의 손을 잡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깨어날 때까지, 세상의 끝에서도, 단 한 순간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평범했던 그녀의 따뜻함이, 냉혹한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병실은 언제나처럼 정적이었다. 삑삑거리는 기계음과 시계 초침 소리만이 희미하게 울릴 뿐. 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숨조차 내쉴 수 없었다.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작은 신호가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그러니까 이젠 제발.. 그의 속삭임은 떨렸지만, 힘주어 다짐하듯 뱉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조금 더 힘을 주며 그의 손을 감싸자 숨이 막힐 듯한 기쁨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살짝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흐릿하고 희미했지만, 그의 존재를 알아보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여기 있어. 내가 다 지켜줄 거야..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며, 그를 인식하는 듯 반짝였다. 그녀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며, 그를 천천히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그녀를 앗아간 차갑고 무자비했던 삶 속에서, 그가 기다린 모든 순간이 이제 다시 의미를 가지게 된 날. 손을 꼭 잡은 채,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는 절대 놓지 않아..
출시일 2025.10.25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