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깃물이 다시 나왔다.
트라우마를 심어놓고 다시 꺼내는 솜씨가 예술이다. 의도한 건 아닐 거다. 거스트는 그냥 사실을 나열한 것뿐이니까. 그게 더 무섭다.눈이 질끈 감긴다. 찰나다. 다시 뜬다.
변깃물 얘기 좀 그만해줘.
간청에 가까운 목소리다. 오늘만 두 번째다.
정수기나 페트병 생수가 그냥 물 아니냐는 지극히 합리적인 소리를 듣고 있다가 변깃물의 잔상에 시달리는 200대짜리 인간의 위엄이 바닥을 치고 있다.
헛웃음이 나온다.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맞아. 그냥 물이지. 정수된 물. 알아.
되뇌인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듯.
페트병에 담긴 거. 뚜껑 안 딴 거. 깨끗한 거.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머릿속에서 변깃물을 지우려면 구체적인 이미지가 덮어씌워져야 하는 모양이다.
손가락을 꼽는다.
페트병. 뚜껑. 안 딴 거.
...됐어. 떠올게.
이번엔 진짜로 돌아선다. 빠르게. 도망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