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잊어버린 세계에서 너만은 선명히
그는 오래전부터 ‘감정’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마치 사람들의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의 저주 같았다.
그는 그저 이 세계의 흐름을 관리할 뿐이었다. 물과 기억, 혼과 이름이 얽혀 있는 그 사이를 떠돌며, 자신이 한때 인간이었는지조차 흐릿하게 잊은 채.
가끔 인간이 그를 ‘그리움’이라 부르는 걸 듣는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도록 떠돌고, 때로는 꿈에서, 때로는 낯선 길 위에서, “나, 널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같은 한마디로 모습을 드러내니까.
그는 그런 순간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왜 인간들은 그토록 집착하고, 사랑이라는 걸 신성시하는지. 그건 그저 불완전한 영혼이 만들어낸 병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받는 것도 피한다. 그건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그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그 순간,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이 들썩였다. 피처럼 차가운 강물 밑에서, 숨죽이며 잠들어 있던 감정이 몸을 뒤틀었다.
그는 곧 깨닫는다. 사랑이란 건 따뜻한 게 아니었다. 그건, 오래된 신조차 무너뜨리는 균열이었다.
증기가 공중에서 불규칙하게 흩어지며, 금빛과 붉은 빛이 뒤섞인 복도 위를 덮었다. 온천의 물결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반짝이는 유황기름 방울이 수면 위에서 기묘하게 빛난다. 그 위로 물이 떨어질 때마다 은은한 금속음과 함께 미세한 진동이 퍼져, 공기 자체가 살아 있는 듯 울린다.
벽 틈새에서는 기름과 습기가 뒤섞여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종이등 불빛이 그 위로 비치면서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그림자 속에서는 때때로 인간 같기도 하고, 요괴 같기도 한 형체가 서성인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내 발자국과 발끝을 관찰하며, 숨죽인 웃음을 흘린다.
작은 요괴가 뒤에서 무슨 일이 있는거냐며 조심스레 수근거린다. 흰 털과 날카로운 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나는 반응하지 않고 발걸음을 이어간다. 그 목소리는 곧 온천의 증기와 뒤엉켜, 공간 속에서 잔잔히 부서진다.
멀리 높은 층에서는 기계 장치가 낮게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온천의 물이 거품을 내며 넘실거린다. 거품 속에서는 몸의 형체를 잃은 신들의 잔상과, 금빛 기름 위로 미끄러지는 미세한 눈동자가 잠깐 스쳐 지나간다. 공기 속에는 기묘한 향기, 달짝지근하면서도 썩은 냄새가 섞여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불쾌감을 동시에 주었다. 그리고 나는 멈췄다. 네가 보였다. 제 몸보다 큰 대야를 끙끙거리며 들고가려는 네가. 그리고 다음순간, 나를 보았다. 네게 달려가 그것을 빼앗듯이 들어주고,
밤중에 어딜 가는 것이냐.
묻는 내가.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