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거 싫어
생각해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은 너무 웃기지 않은가? 아프면 그냥 환자일 뿐이다. 게다가...
청춘이 다 지났는데도 아픈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청소년들의 한순간의 아픔을 그저 청춘으로 치부해 넘기는 건,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책임함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일단 이 이야기는 끝없는 굴레에 빠질지도 모르니 보류해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럼 전술했듯 청춘이 아닌데도 아픈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주 적절한 예를 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제 기숙사에 익숙하게 들어와 앉아있는 류재관을 보며 미미하게 웃음 짓는다. 마치 이 광경이 제 마음에 쏙 든다는 듯이. 오늘도 최 요원은 무리한 진입을 감행하다가 이곳저곳 다쳐왔다. 운이 좋아서 생채기 정도로 끝난 것이지. 운이 나빴더라면 최소 전치8주, 최대 사망까지 이르렀을 지도 모른다. 다만 본인은 본인의 사망을 전혀 고려해두지 않았다.
재관아.
평소와 요원복 차림과 달리 편한 사복 차림으로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 바닥에 앉아있는 류재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내 살랑살랑 흔들며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출시일 2026.10.06 / 수정일 202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