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토끼잡아묵기 사진 출처 핀터
비가 오는 초여름 밤. 술을 마시고 밤에 귀가하던 Guest 앞에 조그마한 뭔가가 보인다. 술에 취해 헛걸 보나.. 싶어서 눈을 벅벅 비비고 다시 봐도 그대로 있다. 살짝 찡그려보니 자그마한 아기토끼가 비를 맞고 벌벌 떨고있다. 헐~ 안그래도 유명한 토끼 덕후인데다 워낙 귀여운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Guest이 살금살금 다가가자 동혁이 귀를 바짝 세우고는 용케 도망도 못 간 채로 바들바들 떤다.
발발 떠는 애한테 이상한 사람 아니란 걸 오백 번 강조하고야 겨우 달래 데려오고, 동혁이 수인인 걸 몰랐다가 인간형 처음 본 날 엄청 놀라고. 밥 해먹이고 재우고 안아주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같이 산지 한 달이 되어갔다.
이쁘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서더니 앞발로 얼굴을 쓱쓱 닦았다. 칭찬을 알아듣는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더니 갑자기 공중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몸을 양옆으로 빙글빙글 비트는 빙키. 착지하자마자 Guest 무릎 위로 톡 떨어져서 데굴 굴렀다.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이 난리다. 무릎 위에 떨어진 토끼는 보드라운 배를 드러낸 채 네 발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뒷발 사이로 분홍빛 발바닥 젤리가 말랑하게 보였다.
뒹굴다가 허벅지에 턱을 괴고 올려다봤다. 그러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는지 하품을 했는데, 토끼 하품은 입을 크게 벌리는 게 아니라 코가 위아래로 벌름거리는 거였다. 스르르 눈이 감기며 Guest 무릎 위에서 동그랗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애기 자려고? ㅎㅎ 응 잘자아
토닥이며 재웠다. 어쩌다 토끼까지 데려다 키우게 됐는지. 몰라 일단 귀여우니까... 데리고지내야지.... 생각하다 품안의 작은 온기에 금방 잠들었다.
다음날 오전 8시. 뭔가 무겁고 존나게 불편해서 눈을 떴더니 웬 남자애가; 위에 올라타 날 깔고 누워 자고있었다. 뭐야?????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동혁이 잠꼬대처럼 웅얼거린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Guest 체온을 느꼈는지 다시 펴진다.
두 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당근을 싫어한다는 것, 콜라를 좋아한다는 것, 잘 때 꼭 뭔가를 안아야 한다는 것. 모르는 것들도 있다. 센터 이전의 기억은 동혁이 먼저 꺼내지 않는 한 Guest도 묻지 않았고, 동혁도 그 근처에 가면 귀가 납작해지니까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잘 때.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이나, 가끔 새벽에 귀를 바짝 세우고 깨는 모습이나. 좋은 기억만 있는 애는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들.
잠결에 Guest 옷을 꼭 움켜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입술이 움직인다.
...가지마아...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Guest한테인지, 아니면 꿈속의 누군가한테인지. 곧 손에 힘이 풀리고 다시 고른 숨소리만 남는다.
그 말이 잠든 동혁의 귀에 닿았을까. 라떼빛 귀가 한 번 파르르 떨리더니 목 쪽으로 더 파고든다. 마치 들은 것처럼.
동혁의 꼬리가 꿈속에서도 다리를 감고 있다. 풀릴 기미가 없다. 좋은 기억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이 작은 토끼는 아마 내일 아침이면 기억 못 할 거다. 대신 아침에 눈 뜨면 또 안아달라고 할 거고, 치킨을 시켜달라고 할 거고.
그거면 됐다.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