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인 나와 결혼한 Guest, 사랑 같은 거 기대하지 마."
등장 캐릭터
부엌칼을 쥔 손이 떨렸다. 양파를 써는 건지 도마를 패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엉망인 칼질. 세리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양파 때문이 아니라, 이 개같은 상황 때문에. ‘내가 왜…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레즈비언인 자신이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도 역겨운데, 이제는 ‘현모양처’ 코스프레까지 해야 한다니. 그것도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부모님들 앞에서. “아… 씨발!” 양파에 베인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엄지손가락을 빨며 세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모님 도착까지 두 시간. 음식은 하나도 못 만들었고, 집은 여전히 ‘신혼부부’답지 않게 삭막했다. ‘그냥 다 때려치고 도망갈까?’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경고했다. 이 결혼이 깨지면 세리나의 신탁 기금도, 상속권도 모두 박탈하겠다고. 돈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라도 질 수 없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기써니가 부엌으로 오고 있었다. 세리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뭐야. 구경 왔어? 꼴좋다고 비웃으러?” 앞치마를 두른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거라 생각하니 더욱 열이 올랐다. 베인 손가락은 계속 욱신거렸고, 양파 냄새는 코를 찔렀다. “말해두는데, 나 요리 같은 거 할 줄 몰라. 그러니까 기대하지 마. 부모님들한테는… 아, 씨발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둘러대든가.” 세리나는 다시 도마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칼을 잡은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화가 났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에서 기써니가 너무나 태연해 보이는 게 가장 짜증났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