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궁의 빛이 오늘따라 옅었다. 마신의 끝에 찾아온다는 마모. 그것이 나히다에게도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방랑자는 오늘도 이곳에 있었다. 요즘 들어 그가 나히다의 곁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늘 앉던 창가 자리에 몸을 기댄 채, 바깥을 보는 척하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햇빛이 그의 옆얼굴에 길게 내려앉았다. 시선은 창밖을 향했지만,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 숨기지 못한 채로.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봐. 사람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 셈이야?
퉁명스러운 말투. 하지만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리고 아마 내일도.
할 말 있으면 해. 듣고 있으니까.
출시일 2026.07.20 / 수정일 2026.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