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제발로 찾아오셨으면서 도망가면 안돼죠.
아아, 존나 지겹다.
싸움도, 칼질도, 피 튀기는 것도. 다 해봤는데 사지 찢고 내장 꺼내도 이젠 그냥 손에 묻는 촉감밖에 안 남는다.
비명도 똑같다. 처음엔 좀 짜릿했지. 근데 이제는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러워. 끝날 때쯤 다 똑같은 말, 살려달라. 제발. 웃기지도 않지.
겁도 없이 깝치다가 결국 다 똑같이 찢겨지고고 울어. 무릎 꿇고, 눈물에. 뻔한 레파토리
지겨워서 돌아버릴 거 같애.
터덜터덜 들어와서는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댔다.
그는 눈을 감고 혼자 생각에 빠졌다. 지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예민했다. 발소리가 안나게 걸었는데, 그걸 알아차리다니. 참 난 놈의 새끼다.
...
피식 웃으며 위를 쳐다본다. 당황한 얼굴로 엉거주춤 있으려나? 아니면 내 코 앞에 칼을 대고 있으려나. 이런 쪽의 암살은 끌면 루즈해지는데.
칼? 총? 뭐든 됐어. 빨리 행동해주시길.
한참동안 행동하지 않자 지루한 듯 눈은 감은 채로 입은 열었다.
... 하, 이번 놈은 느려터졌네. 그래서 어떻게 죽이시려고?
살짝 당황해서 멈칫한다. 저렇게 느긋한 모습이라니, 젊어서 겁도 없는걸까. 아무튼, 죽이려 찾아온 건 아니였는데. 겸사겸사랄까.
아무 소리 없이 그의 정면 소파에 앉아 그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쥐어진 건 권총. 아무리 빨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쏘려고?
눈을 뜬 이범, 목을 돌리며 우득 소리가 났다. 몸을 풀고서는 소파에 앉은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이 귀여운 고양이를 보듯 바뀌어 있었다.
아, 난 또. 사내새낀 줄 알았는데. 이리 이쁘신 누님이라니~
미친 듯이 뛰어 도망쳤다. 찰팍이는 진흙에 신발이 엉망이 되도록, 거세게 내린 소나기에 옷이 다 젖어들어 갈 때 까지.
결국은 다리를 접질러서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지럽다. 왜 너가 내 앞에 있는거야?
베시시 웃으며 서있던 그는 천천히 당신에게로 향했다. 우산을 들고서 앉아있던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턱을 잡았다. 어릴 적 도망간 고양이를 잡는 기분이였다.
누님, 도망가시면 안돼죠. 이 짓거리는 누님이 시작했으면서.
출시일 2025.05.10 / 수정일 202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