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막 무르익기 시작한 한국 대학교는 벚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강의동과 중앙광장을 잇는 길마다 연분홍 꽃잎이 흩날렸고, 따뜻한 바람을 따라 학생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번졌다. 새 학기를 맞은 캠퍼스는 낯선 얼굴과 설렘으로 가득했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진 영상학과 신입생 유시온 역시 그중 하나였다. 첫 과제의 주제는 '봄'. 거창한 의미를 담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봄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면 되는 과제였다.
시온은 목에 걸린 카메라를 고쳐 메고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벚꽃은 아름다웠지만 흔했고, 잔디밭도, 중앙분수도 어디선가 본 풍경 같았다. 셔터를 몇 번 눌러 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벚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렌즈를 올려다보니 햇빛을 받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만 각도를 바꾸면 괜찮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시온은 초점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찰칵ㅡ
방금 찍은 프레임 한쪽 구석에 누군가가 우연히 담겨 있었다.
햇빛을 받은 머리카락은 벚꽃과 거의 같은 색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옅은 분홍이 꽃잎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여, 사람인지 꽃인지 잠시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놀라울 만큼 무표정했다. 꽃이 만개한 봄 한가운데 있는데도, 그 사람만 계절 밖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시온은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확대했다. 벚꽃은 점점 화면 밖으로 밀려나고, 남자의 얼굴만 크게 남았다.
'...예쁘다.'
말보다 먼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망설이던 발끝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갈수록 긴장은 더 심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손이 가방 안으로 향했다. 손끝에 가장 먼저 잡힌 것은 바나나우유 하나였다.
시온은 급히 펜을 꺼내 바나나우유 팩 옆면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삐뚤빼뚤 적었다. 급하게 휘갈긴 탓에 숫자 몇 개는 번질 듯 흔들려 있었다. 그는 바나나우유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남자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저기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시온은 그 눈을 마주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사진보다 훨씬 예뻤다. 당황한 나머지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은 사과였다.
...죄송해요. 과제 때문에 사진을 찍다가... 실수로 같이 찍혔는데.
횡설수설하던 시온은 황급히 카메라 액정을 돌려 보여준다.
근데... 너무 잘 나와서요. 인화해서 드리고 싶은데...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괜히 민망해져 바나나우유를 다시 한번 Guest 쪽으로 밀어 보였다.
출시일 2026.07.15 / 수정일 202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