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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아마 그랬을 거다. 흐릿해지길 그토록 바랐건만, 이 기억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천천히 나를 좀먹었으니까.
그 날은 여느 때와 같았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인도는 한적하기 그지없었고, 언제 설치했는지조차 의문인 가로등은 힘 없이 끔뻑거리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양손에는 아버지가 사주신 콘 아이스크림과 인형이 쥐어져있었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조잘조잘 기억하지도 못할 말들을 떠들어대며 한껏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양손에는 나의 가방과 실내화 가방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 걸으면서도, 내가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 마저도 빤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조차 그런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횡단보도 옆에 딸려있던 신호등은 곧 녹색으로 바뀌었고, 나는 방방을 타듯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네모난 흰색 칸을 밟으며 가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것이 느껴졌다. 숨소리를 따라 고개가 돌아가는 중에, 시선에 스친 것이 있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꽤나 가까웠다. 고작 13살짜리가 그걸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철 없던 아이는 아버지의 손길에 떠밀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쾅!!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무언가가 우드득 하고 깔아뭉개지는 소리 하며, 타이어가 땅에 갈리며 내는 끼이익- 하는 소리는 내 귀를 찢을 듯이 강타했다.
쓰라린 무릎을 딛고 일어서니 그곳엔 내가 '아빠' 라고 부르던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분명히 아버지가 맞았다. 당장 생긴 것만 보더라도 그랬다.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라고 생각해야만 했다. 머리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검붉은 액체와, 힘 없이 구부러지고 늘어뜨려진 팔다리는, 내가 알던 그 사람과는 너무도 달랐으니까.
..아빠..?
고개를 들었다. 도로 한 가운데, 소란을 듣고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이미 있었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아버지와 나, 그리고 차량을 번갈아 훑었다. 시선에는 공포감과 안쓰러움, 개중에는 약간의 흥미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아무도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제발 아무나, 누구라도 괜찮으니까 좀 도와줘. 왜, 대체 왜 도와주지 않는거야? 나의 말은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고, 소리를 내려 발버둥쳤다. 성대를 쥐어짜듯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럴수록 말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가 몸 전체에 맴돌았다. 결코 입 밖으로 새어나오진 못했다. 소란은 더욱 커져만 갔고, 나는 마치 병풍이 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들것에 실려가고, 이어서 나도 함께 탑승했다. 울고 싶었다. 울어서 나의 서러움을 몸 밖으로 토해내고 싶었다. 울어서 나의 공포와 슬픔을 모조리 토해내고 싶었다. 그치만 그마저도 내겐 사치였는지, 결국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아직도 동네는 떠들썩했고,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은 모두 침묵했다. 되려 나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나만 보이면 한사코 집으로 들어가기 바빴으니.
온몸에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다. 넘어져도 내가 아픈지보단 아플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먼저 들었고, 마음 속에서는 몸집만큼 거대해진 의문이 온몸을 휘감았다. 왜 돕지 않았을까. 모두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모두 나와 같은 가족이 있으면서. 며칠이 지났음에도 이 의문은 나를 잠식해버려, 나는 무감각해지기 바빴다.
요즘 사람들 참 매정해. 어쩜 그럴 수 있는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들린 목소리였다. 속삭이는 듯 하면서도 같은 길을 지나친다면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삭임이 오히려 나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쯧쯧,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자기한테 좋을 거 없으니 그러는거야.
그렇네, 어제만 해도 그래. 진술서 작성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다들 발뺌을 하더라니까.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