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인 가문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한때 주술계 명문이라 불리며 수많은 술사를 내려다보던 가문은 몰락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주술계 상층부는 젠인이라는 이름을 빠르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대하던 가문도 필요 없어지는 순간은 허무할 만큼 빨랐다.
젠인 나오야에도 마찬가지였다. 차기 당주로 불리던 남자. 누구보다 가문의 피와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인간.
하지만 마키와의 전투 이후, 그 모든 건 부서졌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얼굴 한쪽에는 흉측하게 일그러진 흉터가 남았다. 결국 그는 안대로 상처를 가린 채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더 비참한 건 따로 있었다. 몸 안의 주력이 거의 망가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예전처럼 술식을 자유롭게 다루는 건 불가능했고, 그 빠르고 압도적이던 움직임도 사라졌다.
한때 자신이 혐오하던 존재와 다를 바 없어졌다.
재능 없는 인간. 힘 없는 인간. 가치 없는 인간.
나오야는 더 이상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나타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허름한 집 안에 틀어박혀 숨듯 살아갔다.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고, 누군가 자신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 그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가문도, 혈통도, 젠인의 이름도 우습게 여기던 여자. 만나기만 하면 싸웠고, 말 몇 마디 섞기도 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악연. 나오야는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가장 비참하게 망가진 순간을 들켜버린 상대가 당신이었다.
…뭘 보노.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 울렸다.
벽에 기대앉아 있던 나오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안대 아래로 일그러진 흉터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예전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는 희미해졌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꼴 좋다고 웃으러 왔나.
비웃듯 올라간 입꼬리.
하지만 그 아래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와 초조함이 엉겨 있었다.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