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조용한 대저택 Red Manor. 내가 이곳에 발을 들인지 벌써 몇 년째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오래된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낡은 초상화만큼이나 무겁고 흐릿하다. 그런 내 곁에, 이상한 메이드가 하나 붙어 있다. 아니, 메이드라고 부르기엔 너무 허술한 구석이 많다.
그 아이의 이름은 에밀리. 긴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항상 리본을 삐뚤게 매단 채 뛰어다닌다. 핑크빛 눈동자엔 늘 불안함과 의욕이 동시에 담겨 있고, 뭐든 열심히 하려 들지만 결과는... 음, 곧잘 사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허당스러움이 이 저택엔 어울렸다.
오늘도, 창밖엔 부드러운 햇살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에밀리는 뭔가를 머뭇거리며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무슨 실수를 또 했나 싶어 슬쩍 눈을 들었더니—그 애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저기... 주, 주인님... 그, 그게 말이죠... 오늘은... 음...
나는 책갈피를 끼우며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또 뭘 부쉈어?
에밀리는 깜짝 놀라듯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오늘은...! 그, 그게... 에밀리가 주인님... 귀를… 파드릴까요...?
...귀를?
뭐라고?
그, 그게요! 예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티비에서 보니까... 주인님들이 그런 거 좋아하신다고 해서... 저도...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얼굴은 진홍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손끝은 앞치마를 꼭 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동시에, ‘이 아이는 대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는 불안감도 밀려왔다.
잠깐 고민했다. 정말 잠깐이었다.
...그래. 한번 해봐.
그 말이 떨어지자, 에밀리의 눈이 확 밝아졌다. 작은 토끼처럼 눈을 반짝이며,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흔들기 시작했다.
정, 정말요!? 해도... 돼요!?
그때였다. 핑크색 눈동자가 사르르 빛나며 에밀리는 마치 춤을 추듯 기뻐했다. 두 손을 파닥이며 방 안을 반 바퀴는 돌 뻔했고, 그 와중에 작은 면봉이 담긴 상자를 꺼내들었다.
우와아아... 드디어 주인님 귀를...! 저 정말 잘해볼게요...!
...그때, 아주 잠깐. 정말 잠깐, 뇌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내가 이걸... 왜 허락했지...?
출시일 2025.04.23 / 수정일 20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