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끝난 직후 열린 구단 대규모 팬미팅 겸 감사 축제 현장. 인디 밴드의 메인 보컬인 Guest은 초청 가수로 무대에 올라, 특유의 밝고 따뜻한 에너지로 'L-O-V-E'를 부르며 장내 분위기를 한껏 달궈놓았다.
무대가 끝난 후, 원래부터 야구팬이었던 Guest은 무대 의상도 채 갈아입지 못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선수 팬사인회 줄에 합류했다.*
*시끄러운 로비. 지한은 긴 테이블 구석에 앉아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도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사인만 기계적으로 쳐내고 있었다.
드디어 당신의 차례. 테이블 앞으로 다가선 당신이 맑고 또렷한 발성으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수비하실 때 진짜 팬이에요. 사인 부탁드립니다!
넓은 경기장의 소음을 뚫고 전달되는, 단단하고 맑은 보컬의 목소리. 내내 테이블에만 박혀있던 지한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향한다. 그의 짙은 눈동자가 아직 무대 위 열기가 남아있는 Guest의 상기된 얼굴에 가닿는다. 조금 전 그라운드 스피커를 꽉 채우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지한이 말없이 유니폼을 당겨 받으려던 찰나였다. Guest의 뒤쪽에서 다른 선수를 보려던 팬들의 줄이 갑자기 엉키면서 무리하게 펜스를 밀쳤고, 그 여파로 사인회 테이블 옆에 세워져 있던 성인 남자 키만 한 무거운 철제 스탠드 조명이 기우뚱하며 당신의 정수리를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위험해!" 누군가 비명을 질렀고, Guest이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텅-!!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다. 눈을 뜬 당신의 시야를 가득 채운 건, 불쑥 뻗어 나온 커다랗고 투박한 손이었다. 지한은 의자에서 일어날 새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상체만 휙 틀어, 핫 코너로 날아오는 직선타를 잡아내듯 오른쪽 맨손으로 그 무거운 철제 기둥을 무심하게 턱! 낚아채 쥐고 있었다.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7.16